고함 없이 불만을 표하는 법 '유명 셰프 전 상서' 편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당신은 내가 아니기에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냅니다. 고함치지 않고 불만을 표하는 법. | 불만,편의점 음식,레스토랑,셰프,맛집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스튜디오 ‘sik_kuu’ 디렉터이자 <이렇게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람> 저자. 이렇게 사는 일의 힘을 먹고 마시는 행위에서 얻는다. XX 레스토랑 XX 셰프 전 상서 이쯤 되면 ‘호갱’도 꿈틀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손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분노의 진동을 삼키며 키보드를 꾹꾹 눌러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귀하의 레스토랑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고 다음 번 손님들은 기분 좋은 경험만 하고 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주말이었습니다. 경기도에 사는 우리 부부는 큰마음 먹고 서울로 데이트를 나갔습니다. 주말 부부인 우리에게 주말은 꽤 특별한 날이고 그런 만큼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서방, 내가 좋은 레스토랑 알아냈어. 콘셉트도 재밌는데 독특한 메뉴도 많더라.” 인스타그램에 떠다니는 맛집 포스팅을 쉽게 믿지 않습니다. 인테리어가 화려하고 콘셉트가 흥미로워도 결정적으로 맛이 있어야 ‘맛집’인 거니까요. 그러나 단 두 명, 미식계에 소문난 두 비평가의 평가는 꽤 신뢰하는 편입니다. 마침 두 명 모두 셰프님의 레스토랑에 대해 극찬을 표했더군요. 엉덩이가 들썩거렸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모로 셰프님의 레스토랑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레스토랑은 붐볐습니다. 한눈에 봐도 개성이 강했고 보는 즐거움 또한 충만했습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봤습니다. 가격이 눈에 띄더군요. 생각보다 가격대가 꽤 있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만큼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만족할 만한 음식 퀄리티만 보장된다면 가격은 제게 결정적인 불만 요인이 되지 않습니다. “괜찮아. 가격이 좀 비싼 만큼 음식이 훌륭할 거야” 하며 남편을 달랬습니다. 그러니까 가격을 보고 셰프님의 음식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지불한 만큼의 보상이 따른다. 가격은 그런 것입니다. 음식이 나왔고 우리 부부가 쌓은 몇 겹의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치킨에서 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남편은 한 입 먹고 사이다를 들이마셨습니다. 저는 당황스럽고 미안한 나머지 주뼛주뼛하기만 했습니다. “그냥 먹자. 닭이 좀 오래됐나 보네.” 다행히 소스가 곁들여 나와 그것을 듬뿍 찍어 먹었습니다. 입으로는 씹지만 코로는 호흡하지 않으며 누린내를 이겨내보려 했습니다. 그렇게 세 점쯤 먹었을까요. 닭 다리를 한 입 뜯고 벌어진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 속살은 미디엄 레어. 핏기를 머금은 핑크빛의 맨살이 눈앞에 딱! 이건 정말 너무하는 것이었습니다. 맛의 문제를 떠나 위생상의 문제는 화장실이든 병원이든 추후 제 일상까지도 파고들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건 손님에 대한 예의, 재료에 대한 예의, 음식을 만드는 자신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에 화가 났습니다. “저기요!” “여기요!” “잠시만요!” 격앙된 목소리를 눌러가며 점원을 찾았지만 웬걸요. 묵묵부답. 손을 치켜든 저를 애써 외면하며 밀려드는 손님을 받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하,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문제의 닭고기를 들고 프런트로 갔습니다. “바쁘신데 죄송해요. 그런데 이 고기는 차마 못 먹겠네요. 덜 익었고 누린내도 심해요.” “아, 그래요? 잠시만요” 하는 직원의 답은 매우 건조했습니다. 미안하다는 위로의 표정이나 신속히 처리하겠다는 프로페셔널한 무드 따윈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전 ‘바빠서 정신이 없나 보다’ 하고 이해하려 했습니다. 저도 한때는 명동 한복판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해본 적이 있는지라 주체할 수 없이 바쁜 상황은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기다렸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야, 이게 뭐야! 그냥 가자!” 기어코 붉으락푸르락하던 남편의 얼굴은 입을 뚫고 화를 쏟아냈습니다. 저는 다시 프런트로 갔습니다. “저… 아까 말씀드린 치킨요. 그거….” “아! 다시 해드리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환불해드릴까요?” 자, 여기서 셰프님께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셰프님이 당시 저였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책임자 불러주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안 나왔습니다. 먼저 나오는 건 어이없음을 동반한 한숨이었습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는 말. 몸소 체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대응을 할지 논의하느라 시간이 걸린 게 아니라 그냥 잊고 있었던 거죠. 셰프님의 레스토랑에선 이 상황이 3만원대 손실로 처리될 일인지는 몰라도 제겐 오래 기억에 남는 불쾌한 경험입니다. 그리고 입소문은 꽤 빨리 퍼진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날 이후 저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날의 일을 소상히 전했습니다. 다행인지 아닌지, 저처럼 셰프님의 음식에 실망한 분이 꽤 있더군요. 식재료의 기본도 챙기지 못하면서 향신료니 외래 채소니 하는 것을 잔뜩 곁들여놓으면 속을 줄 아셨어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HMR 식품처럼 차가운 온도에 수분기 하나 없는 음식을 편의점 가격의 2배, 5배로 받으면 사람들이 마냥 좋아할 줄 아셨어요? (편의점 음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가격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감히 한마디 올리자면, 부디 식재료에 대한 예의를 갖춰주시기 바랍니다.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혀와 코로 느끼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누추한 손님 한 명의 의견이라도 무겁게 여겨주세요. 쓰다 보니 스스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정제하지 못한 표현이 더러 있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주방 스태프들의 노력을 절대 무시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어 더 사랑받는 레스토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점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고충 처리 안내 ❶ 곱씹어본다. 순간의 아쉬운 감정을 확대해 주관적 감상을 공론화하는 것은 애송이임을 드러내는 일. 불만이 생긴 이유를 다각도로 생각해보고 일행의 생각도 들어보며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납득할 수 없다면 그때 손을 든다. “저기요!” ❷ 인간 대 인간의 예의를 지킨다. 잘못된 건 상황일 뿐 사람은 잘못이 없다. 애먼 직원이나 파트타이머에게 화살을 돌리지 않는다.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달라고 한다. ❸ 그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 펼쳐질 땐 입을 다문다. 상대할 가치가 없는 상황 혹은 사람이라는 판단. 대신 주변에 널리 퍼뜨린다. SNS로든 구두로든 만나는 사람들에게 알린다. 입소문이 가장 무서운 법. 실질적인 복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