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없이 불만을 표하는 법 '장애 아동 치료' 편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당신은 내가 아니기에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냅니다. 고함치지 않고 불만을 표하는 법. | 불만,고함,아이 치료,장애인 콜택시,장애 아동

  ’제가 컴플레인을 거의 제기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원고 청탁에 돌아온 회신에 웃음이 터졌다. 충분히 그러할 심성 같아서. 시집 <여수>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을 낸 시인이자 문학 잡지 <릿터> 편집장이다. 장애 아동 치료에 대한 컴플레인의 건  저는 두 딸의 아빠입니다. 큰딸은 만 여섯 살, 작은딸은 다섯 살인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작은딸은 동네 어린이집을 다니고 큰딸은 특수학교에 딸린 유치원을 다닙니다. 큰딸은 장애인입니다. 없애기로 했다지만 아직까지 제도적 힘을 발휘하는 ‘장애 등급제’에 의하면 발달장애 2급입니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나 두 살이 될 때 병원에서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별일이 있는 건 아닙니다. 감기나 장염 같은 잔병치레는 오히려 둘째가 더 많은 편입니다. 외형에 다운증후군의 특성이 있고, 언어나 인지가 조금 느리고, 평발이라 오래 걷기 힘들어하고, 그 모든 걸 합쳐 장애라고 하지만 아빠인 저에게 딸은 그저 딸일 뿐이지 장애인이 아닙니다. 제가 녀석의 부모이기 때문이겠죠.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지금 누구에게 편지를 쓰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두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했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 쓰는 편지일지도 모릅니다. 다운증후군 신생아에게 흔히 나타나는 심장 기형에 대해 약물 치료를 권하다가 결국 적절한 시기를 넘겨 큰 병원에 인계했던 고양시의 종합병원 의사 선생님께 써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아이 손등에 실습인지 치료인지 모를 숱한 주사 자국을 남기고, 볼에 붙인 반창고에 하트나 달팽이 같은 낙서를 남겨두던 신생아 집중 치료실의 간호사 선생님들께 쓰는 편지일지도 모르죠. 장애인을 원아로 받는 것을 무한한 배려로 여기는 동시에 여러모로 소극적인 아이를 방치했던 가정식 어린이집 원장님께 드리는 편지여도 될 것 같습니다. 쓰면 쓸수록 모르겠네요. 저의 컴플레인이, 불만과 불평이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향하는 곳이 너무나 많아서 어지럽습니다. 차라리 카페나 마트에서 흘깃흘깃 의아한 눈빛을 보내며 스치던 수많은 타인들에게 쓰는 편지라 해도 괜찮겠습니다만. 무수하고 평범한 동시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수신자인 당신께 이 편지를 쓰는 것일 테지만, 우선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바로 당신께 말이죠.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는 것들에도 첫아이에게는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두 다리가 해야 할 멀쩡한 걸음걸이, 손가락 마디 끝에 들어가야 할 적당한 힘, 혀와 입술로 만들어야 할 정확한 발음 모두가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재활 병원은 사는 곳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고, 그마저 앞선 대기자가 많았습니다.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을 기다려야 제 딸의 차례가 온다고 하더군요. 반년은 조금 넘게, 1년은 조금 안 되게 기다린 끝에 아이의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내 아이의 치료라는 게 해외여행이나 취미 생활 같은 것과는 다른지라 ‘8개월 정도 기다리지 뭐’ 하는 편안한 마음가짐이 좀처럼 생기지가 않더군요. 저는 일터에 나가고 아내는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안고, 둘째 덕에 만삭이 될 때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며 아이 치료에 힘썼습니다. 장애 등급이 두 살 때부터 나오기 때문에 장애인 콜택시 같은 작은 복지 혜택조차 누릴 수 없었죠. 8개월을 기다린 끝에 받은 재활 치료 기간은 그리하여 4개월 정도였습니다.   지금 큰아이는 자폐, 뇌병변 등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한 반이 되어 특수학교 유치원 교실에서 나름대로의 사회생활을 합니다. 사는 곳 가까이에 특수학교가 있는 게 저로서는 행운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장애아 어머니가 학교를 지어달라고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니까요. 학교가 파하면 일주일에 두세 번 언어 발달 치료 센터에 갑니다. 사설 기관이라 비용이 꽤 들지만 국가가 절반 정도 바우처 혜택을 줍니다. 바우처 혜택에도 장애 등급이라는 게 필요합니다. 센터에는 장애 등급은 없지만 경계성 장애로 말이 늦게 트이거나 행동 발달이 더딘 아이가 많은데요, 그 친구들의 사정이 저희보다 크게 낫지 않으면 부담이 될 것도 같습니다. 언어 치료나 작업 치료를 발레 학원이나 태권도 학원에 보내는 것과 같은 사교육으로 본다면 어쩔 수 없기는 하겠습니다만, 발레나 태권도 학원을 보내는 부모 마음과 센터에서 아이의 치료가 끝나길 기다리는 부모 마음이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애 엄마는 지금 다니는 센터에 이런저런 불만이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이 도시에 언어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은 거기뿐입니다. 병원에서 받으려면 다시 1년, 아니 그 이상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죠.   컴플레인이라 할 수도 없는 컴플레인을 듣는 사람 하나 없는데 이토록 길게 쓰고 보니 조금은 허무한 기분입니다. 반대로 쓰고 보니 한결 시원하기도 하네요. 하루는 제가 사는 아파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장애인 주차 구역을 두고 ‘비정상인’이 많지도 않은데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주차장을 차지한다는 컴플레인 글을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스스로를 정상인으로 여기는 것 같더군요. 이 편지는 아무래도 정상인들에게 보내는 지독한 컴플레인인 듯합니다. 당신은 정상인인가요? 그렇다면 장애인도 정상인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고충 처리 안내 ❶ 되도록 하지 않는다. ❷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❸ 그렇게 노력하다 호구된 적이 많지만… 성격이 성격이라 이 편이 편하다. (컴플레인, 이렇게만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