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꼴데 툰 작가 '샤다라빠'가 말하는 "야구 무관중의 시대"

무관중 시대의 돼먹지 못한 야구팬.

BYESQUIRE2020.07.10
 

무관중 시대의 돼먹지 못한 야구팬

 
코로나19 사태로 고심하던 KBO는 결국 무관중으로 시즌을 시작하는 강수를 띄웠다. 한때 관중석 통로에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던 때가 있었다. 그런 굴욕을 겪으며 관중 없는 경기장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는지 뼈저리게 느낀 연맹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팬이 없는 경기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관중은 프로스포츠를 꽃피우는 것은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그들이 없다면 야구는 그저 18명의 남자들이 모여 공을 던지고 때릴 뿐인, 우스꽝스러우면서 아무런 의미 없는 몸짓이다. 관중의 탄성으로 홈런은 그 의미를 찾고, 라인 드라이브로 쭉 뻗는 공에 수만 명의 눈이 집중될 때 그걸 낚아채는 다이빙 캐치는 비로소 야구로 완성된다.
그런 관중이 없는 야구장도 한 달 넘게 보다 보니 적응이 돼간다. 오히려 내가 응원하는 롯데 자이언츠는 시즌 초반 반짝 연승을 거두며 팬들에게 “관중이 없어서 잘하는 것 아니냐. 여태껏 우리가 경기장에 찾아갔던 것이 롯데 부진의 원인이었다”라는 말까지 들었다. 극성맞기로 유명한 롯데 팬들이 선수들 눈앞에서 자신들이 사라지자 롯데의 성적이 좋아졌다며 흥겨운 자아 성찰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글쎄, 나는 농담으로라도 롯데 팬들이 극성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롯데 팬뿐 아니라 한국 야구의 모든 팬은 세상 어느 스포츠 팬보다 너그럽기 짝이 없다. 응원 팀이 홈에서 14-0으로 지고 있는데 한 점을 만회했다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심지어 그에 맞춰 단체로 춤까지 추는 스포츠 팬이 한국의 야구장 말고 또 어디 있을까? 굳이 유럽의 훌리건까지 볼 것도 없이 나름 얌전하다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필라델피아 팬들만 봐도 상대 투수인 킴브렐의 독특한 투구 동작을 수십 명의 홈 팬들이 보란 듯 따라 하며 투구를 방해하고 해설자는 그런 관중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다. 만약 그런 일이 KBO에서 벌어졌다면 그 야비함과 몰상식함에 대해 해당 팬들에게 얼마나 큰 비난이 쏟아졌을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쨌든 롯데의 연승은 끝이 났고 지금은 차갑게 식은 방망이와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홈런을 맞아대는 투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보란 듯이 예전의 무기력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야구를 틀어놓고 이 글을 쓰는 중인데 선발투수 박세웅은 오늘도 1회부터 홈런을 맞았다.) 그러니 정말로 롯데 팬들은 이제까지의 성적에 대해 별다른 책임이 없는 셈이다. 관중이 있든 없든 롯데는 언제나 못한다. 어찌 보면 이렇게 한결같이 못하는 롯데 야구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고 거기에 노래까지 부르며 응원하는 팬들이야말로 감정적으로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나처럼 배배 꼬인 인간이 보기엔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다.
나도 한때는 승패에 관계없이 춤과 노래로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내야석의 관중을 사랑했고 나 또한 그렇게 조건 없는 사랑을 퍼부을 수 있는 팬이 되고 싶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롯데의 승리에 집착하게 되면서, 그리고 패배에 진절머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 분위기를 견딜 수 없게 됐다. 물론 모두가 웃으며 춤만 추는 것도 아니고, 나와 함께 야구를 보던 사람들은 서너 시간이 넘는 경기 내내 선 채로 경기를 볼 만큼 열정적인 사람들이었지만(그리고 지금도 나를 잊지 않고 종종 전화를 걸어 다음엔 꼭 경기장에서 한번 보자는 인사를 건네는 좋은 사람들이다) 나는 결국 내야석 전체에 퍼져 있는 그 행복한 웃음소리를 참지 못했다. 그 후 나는 노랫소리가 조금이라도 작게 들리는 외야로 자리를 옮겨 조용히 앉아 경기 내내 맥주를 마시면서 내가 원하는 만큼 입을 꾹 닫고 마음껏 인상을 쓰며 롯데가 지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착한 관중과 착한 응원을 꺼리게 되면서 TV 중계를 보는 방법도 조금 달라졌다. 경기에 지고 있을 땐(그러니까 야구를 보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말한다) 음 소거를 한 뒤 내가 처한 상황에 어울리는 우울한 음악을 들으며 화면만 지켜보게 된 것이다. 5회가 넘을 때까지 안타 하나 못 때리는 꼴을 뻔히 보면서도 “최강 롯데”를 외치는 정신 나간 응원 소리가 듣기 싫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 우선 해설자와 캐스터의 틀에 박힌 듯한 대화가 너무나 지겨웠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야구장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얼마나 착한지 알리는 것에 대해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지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소위 떼창을 하는 관중을 보여주며 외국인 선수들이 이런 한국 야구만의 문화에 얼마나 감탄했는지 얘기하고, 경기 전에 만났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그가 얼마나 착하고 예의 바른 청년인지 지치지도 않고 떠벌린다. 대체 야구 선수가 인사를 얼마나 잘하는지 내가 알아서 뭐에 쓴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그런 걸 알고 싶은 야구팬이 있기는 할까? 그 시간에 나는 선수들의 작년 타율이나 방어율을 듣고 싶다. 음주 운전 따위를 하거나 애먼 물수리(부산에 서식하는 수리과의 철새) 머리에 공을 던져 죽이지 않는 한 착하든 말든 야구나 잘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 이런 삐딱한 성격 덕분에 나는 무관중 시대를 꽤나 잘 헤쳐나가고 있는 셈이다. 아니, 오히려 행복한 커플들의 키스 타임을 보는 대신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나누는 트래시 토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으니 이전보다 더 야구를 즐기고 있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야구니까. 하지만 속이 타들어가는 구단과 연맹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야구장의 푸른 잔디와 치어리더, 앰프에서 울리는 응원과 북소리, 맥주와 치킨 냄새를 빼앗겨버린 수많은 야구팬들 역시. 나처럼 모든 것에 불평불만인 돼먹지 못한 팬 따위가 무관중 분위기를 즐기든 어떻든, 구단의 입장료 수익을 책임지고 경기장에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던 열정적인 팬들을 위해 하루빨리 유관중 경기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하고 있다. 어차피 이번 시즌도 롯데는 플레이오프에 가지 못할 테고, 그래서 남의 잔치를 보며 손가락만 빠는 내 처지를 비관하며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우울한 음반들을 줄곧 들으며 시시한 겨울을 보내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텅 빈 야구장 한가운데서 한국 시리즈 우승 팀이 쓸쓸히 헹가래를 치는 모습만큼은 정말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모든 야구팬들에게 그 광경은 영화에서 본 어떤 아포칼립스 신보다 더 리얼하게 절망적인 종말의 풍경이리라.
 
WHO’S THE WRITER?
김근석은 필명 샤다라빠로 활동하는 웹툰 작가로 레진에서 〈꼴데툰〉을 연재 중이다.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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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은희
  • WRITER 김근석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