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꼽은 9월의 책 4

중쇄를 거듭해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골랐다.

BYESQUIRE2021.09.06
 
 

More Copies, Please!

 

① 더 터치: 머물고 싶은 디자인

킨포크 & 아키텍츠ㅣ윌북
산 넘고 물 건너 ‘인스타그램 성지’라는 한 건축물을 찾았다. 들어선 순간 유명세를 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노출 콘크리트와 플랜테리어를 잘 섞어놓아 분위기가 묘했다. 대충 찍어도 그럴듯한 사진이 나왔다. 딱 거기까지였다. 마감이 덜 된 바닥은 걸을 때마다 불쾌한 소리를 냈고 ‘흡음과 차음이 뭐죠?’라고 말하는 듯한 설계는 그 소리를 증폭시켰다.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오직 사진만을 위한 곳이었다. 킨포크와 놈 아키텍츠가 함께 〈더 터치: 머물고 싶은 디자인〉을 낸 이유다. 사진으로 예뻐 보이는 곳이 건축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현상을 꼬집는다. 책은 시각적으론 덜 화려하더라도 자꾸 만지고 싶고 머물고 싶은 매력의 건축물 25곳을 소개한다. 우리나라 건물도 2군데나 있다. 글보다 사진이 더 많아 문외한도 읽기 편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건 크게 2가지다. 첫 번째는 취향이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건물과 인테리어를 비교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잘 다듬어진 편집이 주는 감흥이다. 같은 사진과 글이라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는 걸 보여준다. 페이지를 넘기며 사진을 쫓았을 뿐인데 마치 그 장소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박호준
 
 

② 크래프톤 웨이

이기문 지음ㅣ김영사
얼마 전 직장인들의 마음을 울린 하나의 트윗. “회사란 기계처럼 차가운 인간들이 엄격한 규율 아래 이성적인 룰을 따르는 곳인 줄 알았는데, 커서 보니 이런 얼레벌레 인간들이 어떻게 용케 인류를 발전시킨 건가 싶어짐.” 다수의 공감에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회사는 ‘얼레벌레’ 돌아간다. 아주 극소수의 혁신 기업을 제외하면. 그런 기업을 소개하는 책은 보통 몇 차례 닥친 고난을 훌륭한 경영자와 대단한 직원들이 이겨낸 스토리를 판타지 소설처럼 담아낸다. 이 책도 읽어보기 전에는 그럴 것 같았다.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를 제작한 게임사의 이야기라니 더더욱.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의 80%는 실패에 대한 것이다. 회사와 관계없는 필자는 제3자의 시각으로 2006년부터 시작된 크래프톤의 길을 기록했다. 회사 자체의 ‘기록하고 공유하는 문화’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덕분에 실패담이 아주 리얼하게, 날것 그대로 전달된다. 반복되는 갈등과 위기가 남 얘기 같지 않아 공감성 수치를 느낄 수도 있지만, 거기서 어떤 전화위복이 펼쳐지는지 살펴보는 게 이 책의 재미다. 성공한 기업의 이야기 대신, 기업 버전 무협지라고 생각하면 더욱 쉽게 읽힐 듯하다. 김현유
 
 

③ 물은 H2O인가?

장하석ㅣ김영사
우리는 수소와 산소가 2 대 1의 부피 비율로 결합하여 부피비 2의 물을 생성한다는 걸 알고 있다. ‘2H2+O2=2H2O’로 간략하게 표현되는 이 현상을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학자가 논쟁을 벌였을까? 산소와 수소의 화합물이 어째서 HO가 아니라 H2O인지를 알아야 하며, 모든 기체가 같은 압력에서 같은 부피 속에 같은 개수의 ‘분자’를 포함한다는 아보가드로의 법칙을 알아야 하며, 애초에 물이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졌음을 알아야 하며, 산소와 수소와 물이 자연 상태에선 분자 상태로 존재한다는 걸 알아야 하며, 무엇보다 물이 원자가 아니라 화합물, 즉 분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략 라부아지에의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책은 정작 과학 지식의 역사에 관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현대 화학의 이론이 정립되어 보편적 지식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소위 ‘주류 이론’의 한편에서 무시당한 과학의 다른 이야기가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었는지를 살핀다. 한국이 낳은 석학 장하석이 실험을 통해 산소의 존재를 처음 발견하고 이를 ‘탈플로지스톤 공기’라 이름 붙였던 조지프 프리스틀리의 이야기로 이 책을 시작하는 이유다. 모든 진실이 ‘상황의존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단순한 교조주의에 목매지 않을 때 보이는 진리가 이 책에 있다. 박세회
 
 

④ 시간의 각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ㅣ곰출판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명실공히 인류 영화사의 손꼽히는 거장이다. 그러나 당대 관객들로부터 비난에 가까운 편지를 받기도 했는데, 내용인즉 ‘도무지 영화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정반대 입장의 편지도 있었다. ‘당신의 영화에서 삶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는 감상들. 그의 저서 〈시간의 각인〉은 이 편지들에서 출발한다. 양단의 시선 사이에서 자신의 영화론과 예술론을 정리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탈고에는 무려 16년이나 걸렸으며, 그만큼 대승적 진리를 탐구하면서도 어느 하나 두루뭉술한 개념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그에게 영화란 사람들이 잃어버렸거나 소비한 시간, 얻지 못한 시간을 구현하는 ‘시간의 각인’이고, 그렇기에 감독은 기교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연속적 사실들 속 핵심을 선별해 합쳐야 하며, 그 행위는 생각의 주입이나 사상의 전파가 아니라 ‘목격자’로 하여금 영혼의 밭을 쟁기로 갈아 선으로 향하도록 하는 ‘희생’이어야 한다. 책 속에 촘촘히 새겨진 이 거장의 성심과 통찰은 비단 영화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영감을 얻을 법하다. 30년 전 독일어 번역판을 중역해 출간됐던 〈봉인된 시간〉과 같은 책이지만 다르다. 원문 번역을 통해 그 의도를 더 명확히 전하고자 했으며, 특유의 만연체를 정교하게 옮겨 부드럽게 읽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오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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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PHOTOGRAPHER 김재훈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