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뽑은 10월의 책 4

중쇄를 거듭해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에스콰이어>에디터들이 골랐다.

BY박호준2021.10.08
 
 

More Copies, Please!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 / 디플롯
책의 원제 ‘Survival of the Friendliest’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변형이다. 제목으로도 모자라 서문, 추천의 글까지 모두 ‘적자생존’ 개념으로 운을 떼는데, 해당 미신을 타파하지 않고는 도무지 개진할 수가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통념과 달리 찰스 다윈과 근대 생물학자들은 이 용어를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뉘앙스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번식에 적합한(the fittest) 요소가 있으며 그것이 진화로 연결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다윈의 다음 문장에 주목한다.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 진화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는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들며 다정함이야말로 종의 지속과 번영을 위한 가장 주요한 변수라고 주장한다. 개, 여우, 침팬지, 보노보, 인간에 이르는 폭넓은 사례에서 ‘자기가축화’가 개체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어떤 사회를 만드는지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돌아보는 것이다. 너무 적합한 사례만을 그러모은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어느 대목에서는 다소 비약적인 결론에 어리둥절해지기도 하지만, 아무렴 흥미로운 사실로 그득하다. 일단은 이런 제목의 책이 ‘힐링 도서’가 아닌 과학 분야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게 참 반가운 일이고 말이다. 오성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마이클 셀런버거 / 부키출판사
이 시대의 아이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패닉에 빠진다. 바다 위를 부유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들, 녹아내리는 빙하 위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는 수척해진 북극곰을 보며 세계의 멸망이 코앞에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미국의 교육 현장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던 저학년 아이들이 단체로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레타 툰베리가 그랬다. 열 살 무렵, 엄마와 함께 환경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 불안에 빠졌다. 우울증과 섭식장애를 앓았고, 아스퍼거증후군, 강박장애로 고통을 겪었다. 툰베리가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한 연설을 기억하는가? “난 여러분이 패닉에 빠지기를 바랍니다.” 선한 사람이라면 선한 의도를 가진 그녀의 말에 따라야 할 절대적 의무가 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패닉에 빠져야 할까? 지금 패닉에 빠지지 않으면 당장 지구가 멸망할까?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은 불안의 극단으로 집단의 정서를 몰아가는 종말론적 환경주의를 비판적으로 살핀다. 그럼 이대로 살자는 얘긴가? 아니다. 만약 이 책이 환경론에 대한 단순한 반대로 읽혔다면 다시 찬찬히 읽어보자. 박세회
 
 

코코 샤넬, 세기의 아이콘

론다 개어릭 / 을유문화사
가브리엘 샤넬이 패션계에 미친 영향과 업적을 소개하려면 아무리 간단하게 줄이더라도 〈에스콰이어〉 10월호의 가장 긴 기사가 될 것이다. 그녀가 나치와 협력한 ‘매국노’인지에 대한 논쟁을 벌이려는 건 아니다. 태어난 곳과 형제 관계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제대로 된 패션 교육을 받지 못한 그녀가 어떻게 거대한 패션 제국을 설립할 수 있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 책이 샤넬의 일생을 쫓는 태도도 그렇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중립 기어’를 넣은 채 그녀의 인생을 차근차근 되짚는다. 주변 인물의 생애까지 세밀하게 다룬 702페이지 분량의 본문도 압권이지만, 함께 수록된 163페이지 분량의 주석이 더 놀랍다. 참고한 자료의 양과 수준이 여느 박사학위 논문 이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 ‘론다 개어릭’은 세계적인 명문 패션 스쿨 ‘파슨스’의 예술디자인역사이론학부 학장이다. 그는 미스터리에 가득한 샤넬의 행보를 파헤치기 위해 패션은 물론 정치·경제, 미술사조, 심리학 이론까지 사용했다. 샤넬이 패션계를 떠난 15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프랑스에서 혹평받은 그녀의 컬렉션이 어째서 할리우드에선 크게 유행했는지에 대한 뒷이야기는 나무위키에도 없다. 박호준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이슬아, 남궁인 / 문학동네
이슬아와 남궁인. 수차례 들어온 이름들이었다. 서점에서, SNS에서, 유튜브 클립에서, 텔레비전에서 몇 번이나 이들의 이름을 접했다. 그만큼 유명한 작가들이지만, 이들이 쓴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한두 번쯤 이들이 어딘가에 기고했거나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읽기는 했다. 깊게 곱씹지는 않고 후루룩 읽어버렸는데, 그렇게 넘겨버린 데에는 브라를 착용하지 않은 채 공식 석상에 서고 비건을 지향한다고 밝힌 여성 작가와 명문 의대를 졸업한 유능한 의사이자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는 남성 작가에 대한 몇 가지 편견이 작용했다. 여성 작가는 신경질적일 것 같았고, 남성 작가는 위선적일 것 같았다. 따로 읽어본 적도 없는 두 작가인데, 무려 이들이 함께 쓴 책을 읽게 된 건 제목 때문이었다. 여전히 오해를 쌓은 채 책을 폈지만, 단단한 오해의 무장은 초장부터 해제되고 말았다. 이들은 내 편견을 훨씬 상회할 정도로 유쾌했다. 오해를 풀고도 남을 만큼 흥미로웠다. 두 사람은 책 내내 서로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는데 - 아니, 사실은 거의 일방적이라고 느껴졌지만 - 그 티키타카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 편견은 어느 정도는 오해였고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졌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서로를 향한 답장이 기대돼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는 게 중요했다. 김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