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듣는 책'의 시대에 여전히 '읽는 책'을 고집하는 이유

당근마켓과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읽는 소설.

BY김현유2021.12.16
 
2021년 11월에는 2022년에 출간할 잡지의 기획회의를 한다. 회의에선 이번 호의 마감을 준비하며 다음 호의 기획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속도가 너무 이른 건지, 혹은 조금 늦은 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걸 하나의 세계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언제나 새롭다. 내가 편집에 참여하는 문학잡지 〈릿터〉는 두 달마다 생각해볼, 우리가 사는 삶의 구성 방식에 대해 ‘이슈’라는 코너 제목을 달고 글을 싣는다. 다음 호 편집회의에 등장한 단어들 - 정확히 말하자면 내 다이어리에 적힌 것들 - 은 아래와 같다.

 
‘지금은 희망(비전)을 믿는 세대인가? 앞으로의 희망/비전은 무엇/어디로? 더 이상 말해지지 않는 것? 시트콤: 좋던 시절의 장르(〈거침없이 하이킥〉 다큐멘터리 화제, 젊은 세대 사이 〈전원일기〉의 재유행). 당근마켓(1인 가구와 동네 커뮤니티): 왜 ‘같이 쇼핑해요’ ‘같이 밥 먹어요’라는 글이 올라올까? 모르는 사람이랑…. 로컬(지역)이 맞이하는 변화: 이제는 시골 TV 뉴스에 외국어 자막이 달린다. 메타버스: 메타버스가 뭔지 아는 사람? 비대면 삶: 온라인 영화제. 에너지-자립-불편해지기. 개인주의-관계 맺기-평어 사용.’
 
돌이켜보면 달라지는 시대와 그 속도에 발맞추는 사람들의 현상과, 발맞추지 못하고 조금 어정대는 나의 마음을 나란히 써놓은 듯하다. 이 현상은 뭘까? 이 현상이 즐겁거나 자연스러운 사람들은 누굴까? 그렇다면 나는? 나는 자연스러운가? 즐거운가? 세계는 너무 크고 벌어지는 일은 너무나 많아 모든 것에 가지런한 생각을 내놓을 순 없었다. 다만 내가 일하는 업계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달라지고 있지?
 
최근에 내가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단행본 재수록뿐만 아니라 유튜브나 오디오 낭독에 대한 인용 허가를 요청하는 메일의 수가 늘었다는 것과,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으로 제작되는 책의 종수가 늘었다는 사실이다. 크게는 네이버, 밀리의 서재, 윌라 등에서 오디오북 제작에 큰 힘을 쏟고 있는 듯하다. 밀리의 서재는 원작 도서를 듣는 드라마 형태로 각색한 ‘오디오 드라마’를 제작하고, 윌라는 출판 공모 프로젝트인 ‘브런치북’의 대상작을 종이책으로 출간하는 것에 대한 홍보 혹은 부상의 개념으로 오디오북 제작을 지원한다.
 
빼곡하게 쓰인 활자를 집중하여 읽는 일보다, 영상을 집중하여 시청하는 것보다, 쓰인 글을 읽어주는 것을 듣는 일은 편안하고 덜 힘들 것이다. 오디오북 제작을 검수한 경험은 있지만, 아직 감상을 위해 오디오북을 청취해본 적은 없다. 어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유행이나 현상에 조금 느린 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읽어주는 문자의 속도는 나의 속도가 아니기 때문인 것이 더욱 크다. 이런 작은 일에는, 그리고 유독 읽는 일에서만큼은 나의 속도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
 
책을 읽는 일보다 듣는 일이 훨씬 수월할 텐데, 우리는 왜 여전히 책을 읽을까? 묵독을 하거나 정독을 하거나 속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남이 쓴 문장을 나의 목소리로, 혼자서 속으로 읽어 내려간다는 일 말이다. 나는 그 독특한 일의 매력을 최근에 읽은 소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서이제의 첫 소설집 〈0%를 향하여〉에 수록된 단편소설 ‘임시 스케치 선’은 매우 ‘이 시대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중간에 QR코드가 등장하는데,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소설 속 인물의 인스타그램으로 연결된다. 소설 속에서 동묘를 걷고 낮의 별을 찾고 프라푸치노를 마시는, 내가 읽었던 그 인물의 SNS 계정. 4D 영화를 아이맥스 극장에서 처음 관람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속 인물이 나와 같은 현실을 살고 있는 것처럼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방금까지 소설을 읽던 내가 소설 속 인물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접속하는 일이 가능하다. 소설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신기한 소설.
 
그런데 재미있게도 가장 ‘이 시대스러운’ 그 소설은, 문장으로 쓸 수 있는 예술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묵독으로 여러 번, 잘 씹어 삼켜야 뭉근한 만족감이 드는 문장으로 착착 쌓여 있다. 벽돌처럼 쌓인, 뜨개 니트처럼 짜인 문단들은 ‘읽는 행위’를 무척이나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얼핏 같아 보이지만 다르게 변모하는 문장을 늘어놓으며 착실히 나아가는 것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예술만이 지닌 속도이며 흐름이다. QR코드를 발견하고 싶으면, 잘 쌓인 문장들을 지나야 한다. 읽어야 하는 것이다. 혼자서, 묵묵히.
 
다시 편집회의를 생각해본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혹은 마주하는 이 시대의 현상은 대체로 변하는 마음과 변하지 않는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가족을 이루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중고 거래 앱에서 모여 물건을 나눈다. 앱으로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세상이지만 결국에는 직접 걸어 나가서 거래를 하고 돌아오고, 심지어 짧은 만남 동안 친밀감을 나누기도 한다. 메타버스를 이용해 온라인 영화제도 열 정도로 비대면에 익숙해져 있지만 우리는 자꾸만 누군가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
 
나는 다음 호의 커버 스토리에 골몰하는 와중에 서이제 작가의 소설들을 읽었고, 이번 호의 마감을 위해 서이제 작가를 만났다.(이런 타이밍은 재미있다.) 이번 호에 실릴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뷰에서 서이제 작가는 자신의 전공인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대체로 옛것이 소멸하고 전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함께 있잖아요. 요즘 세대들에게 카세트테이프가 엄청나게 힙한 것으로 여겨져서 다시 찾아지듯이.”
 
서이제 작가는 오래 남을 것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같았고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여전히 함께 있다는 말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함께 간다는 어쩌면 당연한 말이. 언제나 하나만 남지 않는다. 종이책이 사라지고 전자책이 오지 않았듯이. 소설을 듣는 일과 소설을 읽는 일은 전혀 다르게 함께 남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지만 끊임없이 만나려고 하듯이, 혼자가 되고 싶지만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듯이.
 

 
Who's the writer?
김화진은 소설을 쓰고 책을 만든다. 출판사 민음사에서 문학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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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WRITER 김화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