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뽑은 2월의 책 4

중쇄를 거듭해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골랐다.

프로필 by 박호준 2022.02.10
 

① 예술가의 초상

휴고 우에르타 마린 / 앤의 서재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할리우드 배우 케이트 블란쳇,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를 같은 책에서 마주할 줄은 몰랐다. 이어서 등장하는 오노 요코, 트레이시 에민, 아녜스 바르다 등 이름만 들어도 입이 벌어지는 인터뷰이 목록을 보면 책이 세상에 나오는 데 7년이나 걸린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25명의 예술가가 아름다움과 삶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지 살피는 것도 재미있지만, 매달 인터뷰를 진행하는 에디터로서 흥미로웠던 점은 저자가 인터뷰를 끌고 나가는 방식이다. 자신이 던지는 질문은 거의 모두 짧은 문장으로 정리했고, 돌아오는 대답은 10줄이 족히 넘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독자가 인터뷰이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질문자의 모습을 행간에 숨기는 고수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책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봐야 아트 디렉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한 그의 모습이 보인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 조명이나 보정 없이 폴라로이드 사진만으로 초상을 대체한 점이나 대화의 하이라이트 부분만 표지와 같은 색 종이로 강조한 게 그 예다. 아티스트가 아티스트와 주고받는 대화에 흠뻑 빠져들고 싶다면, 들을 줄 아는 인터뷰어의 기술을 훔치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박호준
 
 

②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앵거스 플레처 / 비잉
문학은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야기와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미시간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학연구실에서 연구자로 있다가, 예일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앵거스 플레처보다 이 질문에 잘 대답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문학은 인간이 심리적 도전에 맞서기 위해 발명된 테크놀로지’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문학의 여러 기술들은 서로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명됐다. 예를 들면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그리스 비극을 관람하는 일이 퇴역 군인들의 고립감과 과잉 각성, 회상 후 두려움 증상을 완화할 수 있고,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감각하는 우주적 아이러니는 감상자를 전지전능한 입장에 올려두어 인생에 등장하는 충격적 사건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작가는 성서에 등장하는 욥의 이야기를 통해 사과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기제를 설명하고,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이 황폐하고 폭력적인 나폴리의 역사를 우정으로 관통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현대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지에 대해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여러 문학의 요소들을 어떻게든 심리 기술로 해석해내는 플레처의 논거가 이 책을 빛나게 한다. 박세회
 
 

③ 이상한 날씨

올리비아 랭 / 어크로스
‘Funny Weather’라는 문구가 지시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다. 비단 기후변화만 말하는 게 아니다. 난민 정책, 브렉시트, 인종차별 살인, 임신중단 관련법 개정 등 모든 ‘정치적 기상’을 아우른다. 비유가 유효해 보이는 지점은, 문을 열 때마다 새로운 종류의 위기가 들이치는 환경에서 개개인은 ‘웃기는 날씨네’ 무시하며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번 일일이 맞서 싸우는 것도 힘든 일이며,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재해가 “이해의 과정인 생각을 영영 가로막는 듯한 속도로 터져 나오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영국 작가 올리비아 랭이 권하는 것은 예술의 향유다. 현상들을 빼어난 예술 작품이나 예술가의 삶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 새로운 시간의 틀에서, 혐오가 아닌 “환대가 이뤄지는 공간에서” 다시 조명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정체는 특정 기간의 기고문 중에서 주제에 부합하는 것을 추린 선집인데, 또 그렇기에 지금 가장 주목받는 에세이스트 중 한 명인 올리비아 랭의 저력을 선명히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여권 확인도 하지 않고 이국을 여행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과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가 그리는 정신, 헨리 그린의 소설 <파티 가는 길>의 내용, 난민을 차별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독특한 호흡으로 한데 어우러지는 원고에서. 은근하지만 강렬하고, 무엇보다 아름답다. 오성윤
 
 

④ 공감은 지능이다

자밀 자키 / 심심
“누나는 노답 공능제야.” 남동생의 말에 잠시 당황했다. 청나라 왕 이름 같은 ‘공능제’는 ‘공감 능력 제로’의 줄임말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판할 때 쓰인다. 변명하자면 공감 능력이 부족한 건 나뿐만이 아니다. 애초에 ‘공능제’ 같은 신조어가 유행한다는 것 자체가 대다수 사람들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꼬집고 있을 터다. 그런데, 공감 능력이 향상되거나 감퇴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공감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라 계발이나 퇴화가 어렵다는 인식이 만연한 때가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인식의 오류를 짚고, 지능과 마찬가지로 공감 능력 개발에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 세상의 공감은 꾸준히 감소 중이다. 책에 따르면 2009년의 평범한 미국인들은 1979년 사람들의 75%보다 공감 능력이 떨어졌다.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공감 능력으로 협력과 발전을 이뤄온 인류에게 지금의 상황은 위기인 셈이다. 하지만 단순히 공감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없다. 그렇다면 그 개발은 어떻게 가능할까? 스탠퍼드대학의 심리학 교수이자 사회신경과학 연구소장인 필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김현유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GRAPHER 정우영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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