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캐프리오는 쉬운 선택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는 진중한 작가들의 영화에만 출연하는 것으로 지난 30여 년간 할리우드 정상을 지배해왔다. 당신은 〈인셉션〉(2010)이라는 예외가 있지 않냐 되묻고 싶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블록버스터 감독인 동시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결된 자기 세계를 지닌 예술가다. 놀런의 영화 역시 일종의 ‘안티 블록버스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디캐프리오와 궁합이 썩 잘 맞는 감독이라는 소리다. 나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지금보다 조금 더 대중의 존경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지난 몇 년간 디캐프리오라는 이름 앞에서 얼마나 큰 절망감을 느꼈는지는 독자 여러분도 짐작하고 남을 것이다. 그렇다. 디캐프리오는 지금 할리우드의 가장 거대한 농담거리 중 하나다. 문제는 여성 편력이다. 그는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18명의 여성과 사귀었다. 언제나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었다. 자기보다 젊은 여성, 혹은 지나치게 어린 여성과 사귀는 건 할리우드 스타들의 오랜 버릇이다. 어쩌겠는가. 평생 자가용 비행기를 굴리고도 남을 돈을 벌어들이는 스타들에게는 선택지가 넓기 마련이다. 명성과 자본에 끌리는 젊은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다만, 디캐프리오의 문제는 여기에 괴상한 공식이 하나 있다는 사실이다.
디캐프리오는 20대 초반부터 5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언제나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만 사귀었다. 여자친구가 스물다섯 살이 넘기 전에 항상 이별을 고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조금 징그러운 패턴이다. 당연히 그의 괴상한 연애 패턴은 대중의 먹잇감이 됐다. 2020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리키 저베이스가 “요즘은 영화가 너무 길어져서 영화가 끝나면 디캐프리오와 함께 극장에 간 여자친구가 더 이상 데이트하기에는 지나치게 늙어버렸다고 합니다”라고 농담했을 때까지만 해도 문제는 크지 않았다. 디캐프리오는 저베이스의 농담에 넉살 좋게 함께 웃었다.
농담도 한 번은 재미있지 계속되면 고통스러워지는 법이다. 2022년 에미상 사회자는 젠데이아의 26세 생일을 축하하며 이렇게 말했다. “스물여섯 살은 할리우드에서는 좀 이상한 나이입니다. 고등학생 역할을 맡을 수 있을 만큼 젊지만 디캐프리오와 데이트하기에는 너무 늙었죠.” 같은 해 오스카 시상식에서는 에이미 슈머가 “디캐프리오는 미래의 어린 여자친구들을 위해 환경보호 활동을 한다죠?”라고 농담을 했다. 모두가 히스테리컬하게 웃었다. 디캐프리오는 웃을 수 없었을 것이다. 〈타이타닉〉에서 잭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로즈의 나이 때문이라는 농담이 소셜미디어를 떠돌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이지 늦었다. 이제 디캐프리오가 해야 할 일은 스물다섯 살이 넘는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뿐이다.
자, 나는 확신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절반 정도는 ‘능력이 있다면 나이 어린 여성을 만나는 것이 왜 나쁜 일이냐’고 마음속으로 항변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성인이라면 나이가 어리든 많든 상관없지 않느냐’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불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나는 지금 디캐프리오를 비롯한 많은 남성의 어린 여성에 대한, 아마도 고대에서부터 시작되어 현대까지 이어지는 그 욕망 자체를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욕망은 욕망이다. 사실 여성이 남성만큼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면 분명 그들도 어린 남자를 선호할 것이다. 늙은 남자를 어디에 쓸 것인가 말이다. 어린 남자들이 기능적으로도 훨씬 쓸모가 좋을 것이다.
욕망은 욕망이지만, 문제가 있다. 당신은 디캐프리오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슬픈 일이지만 솔직하게 말해보자. 남성에게는 계급이 있다. 그것은 육체적이고 경제적인, 때로는 문화적인 계급이다. 어린 여성들은 연애 피라미드의 낮은 곳에 위치한 나이 든 남성에게 반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예외가 존재하긴 하지만 예외는 당신을 위한 것이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종종 착각을 한다. 오늘도 당신은 블라인드에서 “인턴 직원이 유독 잘 웃어주고 말도 잘 받아주는데 혹시 그린라이트일까요?”라고 묻는 과장의 글을 읽었을 것이다. “회사 앞 카페 직원이 종종 남은 케이크도 주곤 하는데 혹시 저한테 관심 있는 걸까요?”라고 묻는 부장의 글도 읽었을 것이다. 나는 이 욕망을 ‘오빠 욕망’이라고 부른다. 어린 여성의 작은 친절 앞에서 오빠가 되고 싶어 죽는 기이한 욕망이다. 그런 게 허용되던 시절도 있긴 했다. 소녀시대가 “오오오오빠를 사랑해”라고 노래하고, 아이유가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이라고 노래하고, 심지어 블랙핑크가 “붐붐바 붐붐바 오빠!” 하고 외치던 시절 말이다. 그 시절은 갔다. 더는 어린 여성 아이돌 가수도 ‘오빠’라는 단어를 가사에 쓰는 일은 없다. 오빠의 시대는 끝났다.
게다가 세대의 장벽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Z세대가 아닌 당신은 Z세대의 여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에스콰이어〉를 읽을 정도의 여러분은 분명 자기 세대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젊게 사는 남자라고 자신하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몇몇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틱톡 계정을 가진 남자라면 더욱 의기양양할 것이다. 어린 여성들의 세계 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자격증이라도 주어진 것처럼 내심 자긍심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저씨인 당신은 어린 여성과 ‘하입 보이’ 챌린지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런 건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릴스를 몇 번 찍어본 뒤 이상한 수치심에 사로잡혀 모조리 지운 경험이 있는 중년 아저씨다. 내 말을 믿어라. 나이 40이 넘으면 오프화이트 스냅백을 꾸러기처럼 거꾸로 써서는 안 되는 것과도 같은 의미다.
디캐프리오는 올해 초 열아홉 살 모델과 열애설에 휩싸였다. 인터넷에 분노가 쏟아지자마자 디캐프리오 측은 절대 데이트를 한 적이 없다고 발표했다(그게 사실인지는 모를 일이다). 측근들에 따르면 디캐프리오는 25세 이하 어린 여성만 사귄다는 이미지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고 한다. 자, 디캐프리오가 할 수 없는 일은 이 글을 읽는 중년 아저씨인 당신도 할 수 없다. 물론 어린 여성이 당신의 놀라운 매력에 반해 먼저 구애를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디캐프리오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여전히 ‘그런 일이 혹여나 벌어지면 어떡하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당신 집에 거울이 부족하다는 소리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 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