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섹스 칼럼을 읽으면 제가 병신이 된 것 같아요.”
어느 날 심혜리 씨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선 이 원고를 읽다니. 아무도 안 읽을 줄 알았는데. 거기 더해 나는 재미는 없을지 몰라도 읽는 사람이 불편하지는 않은 섹스 칼럼을 만들려 노력해왔다. 그런데 ‘병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뭘 잘못한 거지?
“그 글을 보면 다들 뭔가 하고 있는데 저는 아무 일도 없단 말예요.” 이어지는 심혜리 씨의 말을 듣자 이해가 갔다. 정말 그랬다. 권헌준 씨도 김예리 씨도, 이 원고에 나온 사람들은 필라테스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섹스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건 개개인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원고라는 모습으로 포장되면 그게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심혜리 씨 대신 물어보기로 했다. 다들 잘 하고 사시는지.
“예전 같지 않긴 해.” 권헌준 씨가 말했다. 경리단길의 종마처럼 살던 권헌준 씨는 사무실이 있는 분당으로 이사를 가서 조용히 살고 있다. 연애도 한다. “나도 여자 친구가 생겼고, 요즘 클럽에 같이 가던 친구들도 다들 잘 안 가는 것 같긴 해. ‘섹스리스 시티’라고? 그럴 수도 있겠네. 나만 해도 그래. 예전처럼 잘 서지도 않고.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 연애를 오래 해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의 권헌준 씨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섹스가 그렇게 좋은 취향은 아닌 것 같긴 해요.” 강성은 씨의 방금 이 말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면서도 시대적 분위기를 꿰뚫는 것 같았다. 마라탕이나 오프화이트를 좋아하는 것처럼, 섹스를 좋아하는 것도 취향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섹스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게 별로 ‘쿨’해 보이지 않는 시대다. ‘쿨’부터가 꽤 옛날 느낌이 나는 단어가 됐다. 30대 후반이 된 강성은 씨 본인도 섹스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욕구가 30대 초·중반보다는 덜한 것 같기도 하고요.” 강성은 씨가 샐러드를 먹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섹스 앤 더 시티>가 그리던 도시 생활과는 완전히 다르다. 1998년에 처음 방송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들은 브런치를 먹듯이 택시를 타듯이 섹스를 한다. 그런 관계가 구현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 대도시의 분위기 자체가 어느 정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섹스를 하고 서로의 체액을 나눠도 택시를 불러 타고 헤어지면 그냥 지난 일이 되는 도시의 익명성은 사람을 들뜨게 만들 수 있다.
1998년의 캐리 일행은 늘 길거리에서 손을 들어 택시를 잡지만 이제 서울 사람들은 다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잡는다. 스마트폰은 택시를 잡는 습관만큼이나 사람들의 섹스 습관도 조금은 바꾸었다. 스마트폰은 틴더처럼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하기도 하지만 애슐리 매디슨처럼 사실상 불륜을 조장하기도 한다. 게다가 스마트폰은 인터넷 연결이 되는 카메라라는 치명적인 특징이 있다. 무례한 섹스를 했다가는 SNS라는 평판 공판장에서 큰일이 날 수도 있다. 못된 놈들은 스마트폰의 초소형 고화질 카메라로 찍으면 안 될 걸 찍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캐주얼 섹스가 구현될 리 없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미래는 <섹스리스 시티> 아닐까. 모두 단톡방과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피드에만 휘말려 섹스는 뒷전이 된 세상이 온 걸까.
“너무 나간 것 같은데요?”라고 도영민 씨가 내 말을 끊었다. 37세 동갑내기 남자 3명인 우리는 종로타워 옆 스타벅스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부터가 훨씬 쾌적해졌다. 그만큼 이야기의 성격도 온건해졌지만. 도영민 씨가 되물었다. “그냥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성욕이 약해진 걸 확대해석한 거 아니에요?”
“일본이랑 똑같은 일이 일어나긴 하죠.” 옆에 있던 문성준 씨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어 설명해주었다. “장기 불황을 겪는 일본은 지금 동정 비율이 엄청 높대요. 내가 몇 년 전에 일본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이 한국에 똑같이 일어나고 있어요. 초식남 등등. 남자들이 예전처럼 섹스를 하지 않아요.” 그렇다니까. 삶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든다면 섹스에 쓸 예산과 마음의 여유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섹스를 할 이유는 줄어들지만 하지 않을 이유는 늘어난다. 점점 확산되더니 여전히 인기인 러닝에 비유하면 더 쉽게 알 수 있다. 몸을 써서 땀을 흘리는 건 똑같지만 섹스는 아무 데서나 할 수도 없고 아무나와 할 수도 없다. 반면 러닝은 ‘몰래 러닝 동영상’ 같은 것도 러닝을 한다고 신고할 일도 없다. “우리가 나이 들어서 그런 걸까요? 젊은 사람들 말을 들어봐야지”라는 도영민 씨의 말로 대화가 마무리됐다. 우리는 나이 든 사람들답게 스타벅스 문 닫는 시간에 맞춰 헤어졌다.
“저는 아직 왕성한데요?” 대학생 지인 조정수 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말투의 반문이 돌아왔다. 그는 왕성한 힘과 욕구를 상징하듯 기말고사 이틀 전인데 자전거를 타다가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여자 친구와 만난 지 오래되었는데도 제 욕구는 여전해요. 친구들도 다 그렇고요. 만나면 ‘하고 싶다’, ‘어떻게 할 수 있나’ 같은 이야기만 해요.” 조정수 씨보다 한 살 많은 김영중 씨 역시 조금 수줍어하긴 했지만 할 말은 확실히 했다. “요즘은 여자 친구가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한창 때예요. 그 전에도 성욕 자체는 늘 강했죠. 그때는 혼자 해결하는 게 워낙 익숙했고요.” ‘혼자 해결’이라는 표현이 젊은 사람답지 않게 품위 있었다. 그나저나 내 가설이 틀렸나? 불경기가 섹스에 미치는 영향과 남녀의 상호 혐오는 인터넷에만 떠다니는 가짜 위기론일까?
“저는 제 일이 더 중요합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30세의 이정준 씨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는 벌써 은퇴를 준비하는 어른 같은 말을 했다. “섹스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같아요. 일 끝나면 친구들과 하는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해요. 아니면 데이트를 하거나. 연애한 지 좀 돼서 그런지 데이트할 때도 섹스를 하는 빈도는 좀 줄었습니다. 만에 하나 그 친구와 헤어진다고 해도 섹스를 추구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제 친구들도 다 비슷해요.” 생활의 무게감이 성욕을 누를 수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