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1959 모델에서 영감을 얻어 새롭게 재해석한 론진 레전드 다이버. 39mm 스틸 케이스에 스틸 브레이슬릿을 매치하고 L888.6 칼리버를 장착해 72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제공한다. 440만원 론진. 코트 알렉산더 맥퀸.
<여름방학>을 하도 봤더니 너무 친근해서 ‘우식아’라고 할 뻔했어요.
(웃음) 예능 때문인지 저한테 반말하는 분들이 부쩍 늘었어요. 시사회장이나 대중과 만날 기회가 있는 곳에 가면 다들 ‘우식아’라고 불러주세요. 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우식 오빠도, 우식 씨도 아니고 그냥 ‘우식아’라고 불러요. 그래서 “네 팬들은 다 누나들이니? 왜 다 ‘우식이’래?”라고 저한테 물어본 선배님도 계세요. 제가 사실 예능을 아주 많이 한 것도 아니거든요. <서진이네> <윤식당> <여름방학> 이렇게 딱 세 개밖에 없는데, 나영석 피디님 덕에 워낙 사랑을 많이 받은 작품들이라 그런 것 같아요.
예능에서 배우의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걸 일종의 ‘소모’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런데 우식 씨는 묘하게도 예능에 나와도 배우의 이미지가 거의 소모되지 않는 것 같아요.
‘소모적’이라는 표현이 이해가 되기는 해요. 배우가 예능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나중에 연기를 하는 데 방해가 될 수는 있겠죠. 그래서 저 역시 예능에 너무 치우치지 않으려고 해요. ‘소모적인 면이 덜하다’라는 것도 이해가 되네요. 워낙 작품 속에서 제가 맡은 캐릭터들 중에 까불이가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각 잡고 멋있는 척하는 연기를 별로 안 하다 보니 예능에서의 캐릭터랑 크게 부딪히지 않는 거죠.
예능에서 굳이 웃기려 하기보다는 워낙 편한 모습으로 나와서인 것 같기도 하고요. 특히 <여름방학>에서 정말 편해 보였어요.
실은 제가 엄청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기는 해요. <여름방학>도 초반에는 엄청 긴장해서 버벅거렸거든요. 이상하게 예능 카메라 앞에만 서면 소극적이 되어서 마음 편하게 노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나마 나중에는 긴장이 좀 풀려서 편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후반부에 긴장이 풀려서였을까요? 잠에서 깼을 때라든지, 장난을 칠 때 문득문득 순진한 표정의 소년미가 드러나는 장면들이 참 좋았어요.
근데 이제 곧 있으면 그 소년미가 사라지겠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 좋겠어요. 요즘 잘 늙어갈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운이 좋게도 좀 동안인 편이라 교복을 꽤 오래 입었어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교복을 입었으니까요. <그 해 우리는> 촬영 때도 교복을 입었고, 이제 곧 공개되는 <살인자ㅇ난감>에서도 입었죠. 아직까지는 교복이 어울리는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다른 배역들을 맡아봐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소년미를 잘 정리해서 마무리하고 좀 멋진 남자, 청년미를 지닌 남자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넷플릭스 시리즈인 <살인자ㅇ난감>의 촬영을 끝낸 게 1년 정도 지났어요. 꽤 쉰 셈이죠. 예능에 출연하긴 했지만, 연기는 쉬었어요. 작품에 들어가면 일종의 루틴이 생기거든요.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고, 연습하는 일상의 루틴이요. 그게 없이 1년을 긴장감 없이 편하게 지냈죠. 데뷔 이후 작품을 이렇게 길게 안 한 기간은 두 번째인것 같아요. 아니, 어찌 보면 처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처음에 쉬었을 때는 정말 작품이 안 들어와서 기약 없이 쉰 거였거든요. 그땐 마음이 지금처럼 편하지 못했죠.
38.5mm 스틸 케이스에 그레이 앨리게이터 스트랩을 매치한 론진 플래그십 헤리티지. 1957년 오리지널 모델에서 영감 받은 돔형 다이얼과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냈다. 420만원 론진. 재킷 페라가모, 팬츠 발렌티노, 부츠 베르사체. 터틀넥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쉬어보면 또 쉬는 일상의 루틴이 만들어지지 않나요?
만들어지긴 하는데, 오래 걸리더라고요. 배우들은 대부분이 열여덟에서 스무 살의 어린 시절부터 오디션의 경쟁을 뚫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하면서 지내는 경우가 많고, 그 경쟁을 뚫고 작품에 들어가면 현장에서 감독님들, 스태프분들과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아요. 아주 어려서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하는 셈이죠. 저만 해도 그 ‘일’은 정말 많이 배웠어요.
1,2,3번 카메라의 위치에 따라 시선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배들의 액션에 따라 나는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에요. 그런 것들은 현장에서 또 뒤풀이 자리에서 정말 많이 배웠죠. 왜 ‘최고의 교실은 현장이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문제는 현장 바깥에 나가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거예요. 막상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오니까, 어떻게 쉬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선배님들이랑 술 마실 때도 맨날 “그 장면에서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요?”를 물어봤지, “선배님은 쉴 때 어떻게 쉬세요? 쉴 때 뭐 하세요?”라고 물어본 적은 없거든요. 쉬면서도 처음에는 자꾸 ‘지금 내가 잘 쉬고 있는 걸까?’라고 의심했어요. 그런데 그런 시간도 조금 지났고, 이제는 그냥 별생각 없이 막 살아 있습니다.
문득 든 생각인데, 참 좋은 대화 상대네요. 뭐랄까, 캐치볼 상대방이 던진 공들을 최선을 다해서 받아주고, 편하게 다시 던져주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캐치볼을 하다 보면 나중에 글로 쓸 때 뭘 써야 할지 모르게 되지 않을까요?
걱정 마세요. 우리가 주고받은 모든 공이 다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대화를 재밌게 주고받았다는 사실 정도는 드러나게 옮겨볼게요.
티만 나면 되죠. 다행이네요. 하여튼 그래서 최근에는 ‘잘 쉬고 있는 걸까’라는 의심 자체를 버리자, 제일 좋은 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쉬고 싶은 스타일대로 쉬는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 먹었어요.
쉬는 것 말고 현장 밖에서 또 해야 할 일들이 있을까요?
있죠. 감정을 좀 배워야겠어요. 제가 지금까지 맡은 역들을 보면 대략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이나 30대 초반까지의 남성이었거든요. 그런 역할을 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어요. 저 역시 그 시기를 살아왔으니 어느 정도는 그 나이대의 감정을 축적해둔 게 있거든요. 상황에 맡게 제가 살면서 느꼈던 감정을 꺼내서 썼어요. 근데 점점 제가 맡은 배역들이 제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맞아요. 뭐랄까…(제가 모르는 감정의 역할을 만나면) 무기가 없이 전장에 나가는 느낌이 들어요. 대사도 지문도 다 쓰여 있으니까, 대본을 파고, 캐릭터를 만들면 어떻게든 되긴 할 거예요. 그렇지만 확신이 들지 않고 불안한 거죠. 그래서 쉬면서 보통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서 그들의 얘기를 자주 들어보려고 했어요. 저희 형이 1983년생이라 형과 형의 친구들을 만나고, 그 형들이 하는 인생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쉽진 않더라고요.
39mm 스틸 케이스 론진 레전드 다이버. 수퍼 루미노바 코팅한 인덱스를 통해 어두운 곳에서도 정확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440만원 론진. 블랙 터틀넥 톱, 블랙 페도라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예전에 한 아이돌 인터뷰에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멤버가 있어서 좋은 건 정말 긴장되고 불안하고 떨릴 때 나랑 똑같이 벌벌 떨고 있는 누군가가 바로 옆에 있다는 점’이라는 얘기였죠. 우식 씨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다 그렇게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요. 한때는 작품 들어가면 불면증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어요. 현장에서 뭘 해야할지 모르겠는 상태가 된 적도 있었고요. 그런데 뭔가를 깨달은 이후 그런 게 싹 없어졌거든요. ‘아, 나만 쫄아 있는 게 아니구나. 이 선배님도 저 선배님도, 심지어 감독님도 그렇구나. 우리 다 한배에 타고 있구나’라는 걸 깨닫고 그런 것들이 싹 사라졌어요.
최근에는 곧 공개되는 작품 때문에 긴장될 것 같아요.
너무 두근거려요. <살인자ㅇ난감>은 웹툰 시절부터 워낙 마니아 층이 두터웠던 작품이잖아요. 전 이 작품이 공개됐을 때 거의 실시간으로 봤거든요. 2010년에 나온 거니까 벌써 13년 전이죠. 저야 이 작품을 정말 좋아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볼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또 원작의 마니아들은 이창희 감독과 저희 배우들이 현실화한 이 작품을 어떻게 볼지도 엄청 궁금해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가 주인공인 ‘이탕’인데, 심플한 듯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복잡한 캐릭터거든요. 이 캐릭터들이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너무 궁금해요.
웹툰이 처음에 나왔을 때 하도 심리묘사가 뛰어나서 작가가 살인 경험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었죠.
그 웹툰 작가님은 진짜 천재인 것 같아요. 꼬마비 작가님의 다른 작품인 <S라인>이라는 작품도 대단한데, 그 작품도 곧 극화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웹툰 원작을 극화하다 보니까 확실히 어려운 점은 있더라고요. 원작이 2등신 웹툰체로 그린 4컷짜리 연작 만화 형식이잖아요.
41mm 스틸 케이스에 오묘한 컬러의 선레이 그린 다이얼을 장착한 론진 콘퀘스트 280만원 론진. 셔츠, 팬츠, 타이 모두 더 로우. 슈즈 프라다.
그렇죠. 4컷마다 제목이 다 따로 붙어 있지요.
인물도 사실적인 극화체가 아니고 정말 미니멀하게 그린 작품이라, 배경도 표정도 거의 없다시피 하죠. 많은 것들이 공백으로 남아 있어서 그런 캐릭터를 현실로 끄집어내고 감정선을 연결하는 게 힘들었어요. 가끔은 ‘어? 감정선이 약간 튀는데’라고 여겨지는 부분들이 생기더라고요. 이창희 감독님을 비롯한 배우들이 다들 이런 점을 주지하고 확실히 채워나가며 작업해서 다행이었죠. 힘들었지만, 그런 과정이 무척 흥미롭기도 했어요.
음표가 다 적혀 있는 클래식 악보가 아니라 멜로디랑 코드만 적힌 재즈 악보 같은 느낌이군요.
빈 공간이 많으니까 저희도 극화를 하면서 좀 자유롭게 비트를 가지고 놀 수가 있더라고요. 원작 자체도 비슷한 느낌이 있어요. ‘어 이게 무슨 말이지?’라고 생각하고 읽다 보면 조금 뒤에야 무슨 뜻인지를 알려주는 식의 패턴이 많아요. 그런 부분들이 참 재밌어요.
우식 씨가 맡은 ‘이탕’은 사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원형이라고 볼 수도 있겠어요. 죽어도 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인가 아닌가, 고민하게 되지요. 너무 원론적인 얘기지만 이탕의 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안 그래도 작품이 공개되면 제작 발표회에서 반드시 이 질문은 받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이 작품의 ‘척추’니까요. 살인은 죄악이죠. 죽어도 좋은 사람은 없어요. 탕이가 사회적 복수를 원하는 마음을 따라가려 했어요. 가끔 어떤 뉴스를 보면서는 세상에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이 많고, 또 다른 쪽에는 나쁜 사람들이 있는데 이탕 같은 사람이 한 명쯤 있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이 드라마는 장르를 구분하기가 힘들어요. 범죄물이지만, 범인을 잡는 구조는 아니고, 서스펜스가 있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게다가 모든 캐릭터가 성장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성장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지요. 살인이 소재니까 액션이 주를 이룰 것 같지만, 그건 또 아녜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초반부에 엄청 놀랄 거라는 거예요. 관객들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장면들이 펼쳐질 거거든요. 아마 신선한 충격일 겁니다.
저는 웹툰을 다 봤어요. 우식 씨도 그렇죠. 관객들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웹툰을 보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그냥 보는 게 나을까요?
정말 많은 장르의 주인공을 이미 맡았어요. <마녀>는 슈퍼히어로 판타지물이었고, <경관의 피>는 형사물이자 혹은 범죄물이었고, <그 해 우리는>은 로맨틱 코미디였죠. 최근에 어떤 역을 맡아보고 싶은가요?
요즘에는 일상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최근에 작업한 게 <살인자ㅇ난감>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주인공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그런 작품을 찍고 싶어요. 최근 BBC ONE의 드라마 중에 <This is Going to Hurt>라는 걸 보고 있는데, 정말 너무 좋은 작품이에요. 주니어 닥터가 산부인과 병동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엄청 사실적으로 그리죠.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생활에서도 캐릭터들의 감정선이 아주 섬세하게 그려져요. 극한의 감정을 오가는 장르물 말고 이런 ‘캐릭터 드리븐’한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원래는 제가 감정 소모를 많이 하는 캐릭터를 힘들어하거든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2~3배는 고민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요즘엔 그런 복잡한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저도 최우식이 복잡하고 양면적이고 섬세한 캐릭터를 표현할 때 가장 빛나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얘기해주시니 감사하네요. 캐릭터를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고, 깊게 파고 연마해서 어렵게 내놓을 때가 제일 재밌어요. 예를 들면 <거인>이라든지 <기생충>의 캐릭터들을 맡으면 그 배역에 거의 찌들다시피 빠져야 하거든요. 그런 게 재밌죠.
최근에 <거인>을 다시 봤거든요.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우식 씨가 종종 ‘다시 만나 뵙고 인사드리고 싶다’고 얘기하는 김태용 감독은 <거인>의 김태용 감독이고, <원더랜드>의 김태용 감독과는 다른 사람이죠?
38.5mm 스틸 케이스, 연분홍 다이얼, 앨리게이터 레더 스트랩이 조화로운 론진 마스터 컬렉션 340만원 론진. 그레이 재킷, 셔츠 모두 디올 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