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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KBO 야구개막은 유난히 뜨거웠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17년 만에 WBC 8강에 오르며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3월 28일 정규 시즌이 시작됐다. 2024년 KBO리그는 첫 천만 관중 돌파했고 2025년 1,231만 명으로 역대 최다 경신, 2026 시즌은 3년 연속 1천만 관중 도전 위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숫자만으로는 지금의 야구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카드사가 줄을 서고, 굿즈는 완판되고, 야구장 인근은 관광지가 됐다. 야구는 젊은 세대가 소비하고 참여하는 팬덤형 대중문화가 됐다. 그 중심엔 지역이 있다. 롯데와 부산, KIA와 광주, 삼성과 대구. 한화와 대전, 야구장이 그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고, 원정 팬이 지역 소비자가 됐다.
마침 해외여행 비용이 크게 오르고 있다. 유류할증료가 치솟으면서 국내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전국으로 내팀의 경기를 보려 원정을 떠나는 KBO리그의 팬들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원정 응원을 겸한 국내 직관 여행, 야구장에서 시작해 그 도시의 전통주 양조장으로 마무리하는 코스다.
야구개막 시즌, 전통주 시장도 함께 들여다볼 만하다. 한때 명절 선물 세트 안에서나 보이던 술이 지금은 2030이 직접 찾아가는 취향 문화가 됐다. KBO가 야구를 경기에서 팬덤 문화로 바꿨다면, 전통주는 술을 전통에서 취향 문화로 바꿨다. 둘 사이엔 한가지 공통 키워드가 있다. 바로 로컬이다.
먼저 짚어둘 게 있다. KBO 야구장은 외부 주류 반입에 엄격하다. 여기서 소개하는 술은 경기 중이 아니라, 직관이 끝난 뒤 야구장 인근 식당에서, 혹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꺼내들 술이다. 이건 관람 안내서가 아니라, 팬덤 여행 안내서이다.
1.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LG 트윈스·두산 베어스 → 한강주조
한국 야구의 상징과도 같았던 잠실야구장은 올해를 끝으로 사라진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과 함께 문을 연 이후, 45년간 한국 야구의 심장이었던 잠실야구장이 2026 시즌을 끝으로 철거된다. 이후 2031년을 목표로 같은 자리에 돔구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야구 팬이라면 올 시즌 잠실 직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는 잠실 야구장과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 LG 트윈스는 2023년과 2025년 코리안시리즈를 제패하며 2020년대 리그에서 가장 강한 팀이기도 하다. 반대로 두산 베어스는 2010년대 4회 우승을 하며, 2010년대 가장 강팀이었다. 이 두 팀의 오래된 라이벌리는 잠실 더비를 KBO 최고의 라이벌전으로 만들었다. 만약 올해 한국시리즈가 두 팀의 맞대결로 성사된다면 더그아웃 시리즈가 된다. 잠실의 마지막 해에 성사된다면 그것 자체가 진기록이다.
서울의 감각을 담아 빚은 현대적인 전통주,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경기 후 지하철 2호선으로 두 정거장, 15분이면 성수동 한강주조에 닿는다. 전통주 붐을 이끈 1세대 양조장으로 서울 쌀로 빚는 서울 지역특산주다. 넷플릭스 <미드나인 아시아> 한국편에 소개됐고, 대표 제품 나루 막걸리는 잠실야구장 옆으로 흐르는 그 한강 나루에서 이름을 따왔다. 45년 역사의 구장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한강을 이름에 담은 술을 한 잔 하는 것은 어떨까?
2. 고척 스카이돔 | 키움 히어로즈 → 같이양조장
고척 스카이 돔은 대한민국 최초의 돔구장이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이다. 이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키움 히어로즈는 KBO리그의 메이저리그 사관학교라 불린다. 김하성, 이정후, 김혜성. 이 팀에서 나온 선수들이 더 큰 무대로 나가 빛난다. 팀의 우승보다 팀이 만들어낸 선수들이 더 유명한 구조다. 키움 히어로즈는 KBO에서 여성 팬 비율이 높은 구단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K-POP을 비롯하여 여러 가수들의 공연이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리는 것 처럼 키움 응원 또한 그와 비슷한 점이 있다.
함께 마시는 즐거움을 담은 개성 있는 술,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고척 스카이돔에서 가까운 곳으로 합정역 근처에 같이양조장이 있다. ‘같이’라는 말처럼 이곳은 다양한 연령층과 성별 구분없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전통주를 빚어낸다. 이곳은 다양한 과일들을 비롯하여 여러 부재료를 사용하여 막걸리를 빚는다. 이곳의 납작복숭아 막걸리는 기존 막걸리 팬이 아닌 사람들까지 줄 세웠다. 연희민트는 합정 좁은 골목 양조장에서 나와 SNS를 뒤덮었다. 구단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꾸준히 메이저리거를 배출하는 키움 히어로즈처럼, 이곳은 꾸준히 화제가 되는 막걸리를 만들어낸다. 고척 스카이돔에서 자동차로 20분이다.
3. 인천SSG랜더스필드 | SSG 랜더스 → 주연향
SSG 랜더스는 전신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2000년대 후반 KBO를 호령한 이른바 'SK 왕조'의 계보를 잇는 팀이다. 2007년, 2008년, 2010년, 2018년 우승에 이어 SSG 랜더스로 재편된 뒤 2022년에는 KBO 역사상 최초로 개막부터 폐막까지 단 한 번도 1위를 내주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썼다. 인천 야구의 자부심을 등에 진 두터운 팬층도 그 시간과 함께 쌓여왔다.
주연향은 인천 강화도에 위치한 양조장이다. 프리미엄 약탁주 라인과 야수 소주 시리즈로 세계 대회 금메달을 2년 연속 거머쥔 곳이다. 술의 품질로 증명하는 양조장이다. 거기에 ‘야수’라는 이름은 SSG 팬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이름이지 않을까?
강화도의 재료와 향을 살린 지역 전통주, 인천광역시 강화도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주연향까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SSG의 2군 구장인 강화 퓨처스필드와는 가깝다. 1군 직관을 마치고 강화로 넘어가 퓨처스 경기를 보는 것도 하나의 코스다. KBO의 미래가 될 유망주들이 땀 흘리는 모습을 보고, 그 옆 동네에서 빚어진 술 한 잔으로 마무리하는 여행. 인천 야구의 과거와 미래를 하루에 담을 수 있다. 강화 퓨처스필드에서 자동차로 20분이다.
4. 수원 케이티 위즈파크 | KT 위즈 → 아토양조장
KT 위즈는 KBO에서 가장 늦게 창단된 막내 구단이다. 2015년 1군 무대에 처음 올라온 이후 4시즌 연속 하위권을 전전했지만, 팬들은 그 시간 동안 팀을 떠나지 않았다. 그 의리 있는 팬덤이 결국 보답을 받았다. 2021년 창단 7시즌 만에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하며 신생팀 최단 기간 통합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썼다. 이후로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며 수원을 야구 도시로 만들어가고 있다.
정갈한 맛과 깔끔한 향이 돋보이는 술,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아토 양조장도 비슷하다. 경기 남부 용인에 자리한 이 양조장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생긴 지 얼마되지 않아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수상 이력을 쌓더니 결국 미쉐린 레스토랑 모수의 선택을 받으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엄밀히 수원 소재 양조장은 아니고 용인이다. 하지만 전통주는 인접 지역의 농산물로 빚으면 그 지역 전통주로 인정받는다.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자동차로 20분이다.
5.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 한화 이글스 → 주방장양조장
지금 KBO에서 가장 뜨겁게 인기가 급성장하는 팀을 꼽으라면 단연 한화 이글스다. 오랫동안 하위권을 전전하며 패배에도 팀을 떠나지 않았던 ‘보살 팬’들은 작년 그 보답을 받았다. 2025 시즌 한화는 두 번의 10연승을 기록하며 1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고, 신규 팬의 유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팬들 사이에서 '마리한화'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독성이 있는 야구다..
음식과 곁들이기 좋은 균형감 있는 술, 대전광역시 유성구 / 이미지 출처: 업체 네이버 지도 등록 사진
대전 유성 주방장 양조장의 쑥크레가 그렇다. 쑥을 사용한 막걸리로 맛보기전에는 과연 이 술이 맛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한번 마셔보면 거부할 수 없다. 한국인이라면 유전자에 새겨진 쑥 맛을 거부할 수 없다. 또 디저트하고도 상당히 잘 어울릴 술들을 만들어내는 양조장으로 ‘빵의 도시’ 대전과도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이 주방장 양조장은 ‘마리한화’같은 중독성 있는 술들을 빚어낸다.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자동차로 30분이다.
6.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 | KIA 타이거즈 → 꿈브루어리
KIA 타이거즈는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이어온 통산 12회 우승의 KBO 역대 최다 우승팀이다. 19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매 10년대마다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구단이기도 하다. 그 오랜 왕조의 역사가 만들어낸 팬층은 광주와 전라도를 넘어 전국으로 뻗어 있다. 전국 어느 원정경기를 가도 기아 팬들은 존재한다.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직관은 특별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KIA 팬들이 만들어내는 응원 밀도는 여느 구장과 다르다.
젊고 실험적인 감각으로 완성한 로컬 술,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꿈 브루어리는 광주에서 가장 힙한 카페 골목 한가운데 있는 양조장으로 각종 품평회 대상을 받은 실력 있는 곳이다. 광주 쌀과 전통 벼누룩으로 빚은 꿈의 대화는 그 자체로 광주를 담은 술이다. 명문은 오랫동안 잘해온 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실력이 차곡 차곡 쌓여 있는 술을 선보인다. 마치 KBO 리그가 처음 개막했던 때 이후로 차곡 차곡 명문의 전통을 쌓아왔던 기아 타이거즈와 그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자동차로 10분, 날씨가 좋다면 광주역을 지나 걸어서 방문도 가능하다.
7.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 삼성 라이온즈 → 달성주조
삼성 라이온즈는 KBO를 대표하는 전통 명문이다. 2010년 초반 3연속 통합우승을 달성하며 삼성 왕조를 달성했고, 올 시즌엔 KBO 최초 팀 통산 3,000승이라는 역사적인 기록도 달성했다. 그런데 지금의 삼성을 과거의 무게만으로 설명하면 절반밖에 못 본다. 현재 삼성의 선수 평균 연령은 KBO에서 손꼽히게 낮다. 이재현, 김영웅, 원태인 같은 20대 초중반 선수들이 주전 라인업을 채우고 있다.
그라운드 위만 젊은 게 아니다. 삼성라이온즈파크 관중석도 달라졌다. 10~20대 팬층이 빠르게 유입됐고, 여성 팬층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응원가는 이미 리그에서 손꼽히는 수준이고, 잔디석과 외야 패밀리석이 채워지는 응원 분위기는 예전 삼성과 확연히 다르다. 대구 야구가 이렇게 젊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지역의 시간과 정성을 담아 빚은 술, 대구 달성군 논공읍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대구 달성주조도 그렇다. 대구·경북 농산물로 빚는 지역 특산주를 기반으로 디저트 막걸리를 선보이며 젊은 소비층을 사로잡았다. 전통주라는 틀 안에서 계절마다 새로운 시도를 이어간다. 오래된 것이 젊어지는 방식. 삼성 라이온즈와 닮았다.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차로 30분 거리다.
8. 창원NC파크 | NC 다이노스 → 맑은내일
창원과 마산의 야구 열기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마산아재다. KBO 리그 역사상 전투력이 가장 강력한 야구 팬으로 평가받는 존재였다. 매진 구장에 몰래 잠입하고, 외야에서 삼겹살 불판을 깔던 전설. 야구에 대한 갈망이 만들어낸 독보적인 팬 문화였다. 그 마산아재들이 재집결할 계기가 생겼다. 2012년 NC 다이노스의 창단이었다. 마산·창원·진해를 하나로 묶은 통합 창원시를 연고로 한 팀이 생기면서, 흩어졌던 야구 열기가 다시 모였다.
맑고 산뜻한 맛을 전하는 지역 양조주, 경남 창원시 성산구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맑은내일은 1945년 창원 의창구 작은 정미소에서 시작해 수십 년을 버텨온 양조장이다. 마산아재의 역사만큼이나 이 지역에 오래 뿌리내린 곳이 리브랜딩을 통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고, 주류대상 대상을 받으며 다시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새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래된 것들이다. NC파크에서 차로 15분이다.
9. 사직 야구장 | 롯데 자이언츠 → 가랑가랑 양조장
KBO에서 가장 열정적인 팬과 응원 문화를 꼽는다면 단연 롯데 자이언츠다. 이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KBO 리그의 팬 어느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부산 갈매기가 울려퍼지고, 관중이 하나가 되는 사직야구장의 밀도는 어느 구장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이런 열정적인 팬덤과 응원문화를 가진 구단은 전세계에서도 손에 꼽아야 한다. 구도 부산이라 불리는 팬덤의 열기. 경기가 끝나고 나면 목이 쉬어 있는 게 당연한 구장이다. 이제는 부산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기도 했다.
부산의 활기와 개성을 담은 로컬 술, 부산 사상구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가랑가랑 양조장은 부산을 닮은 전통주를 선보인다. ‘가랑가랑’이란 말은 액체가 가득 찬 모양에서 가져온 말로 막걸리의 경쾌한 리듬을 보여주고 싶다는 대표님의 생각에서 출발했다. 부산 사상에 자리한 이 양조장의 대표님은 원래 음식을 하셨던 분으로 그 경험이 술에 그대로 녹아 있다. 부산 돼지국밥 한 그릇, 씨앗호떡 하나와 함께 마셨을 때 가랑가랑 막걸리는 그냥 술이 아니라 페어링이 된다. 부산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시원하고 호쾌한 맛. 한 시간 넘게 목청껏 응원하고 난 뒤의 첫 모금으로 딱 맞는 술이다. 설명보다 한 모금이 빠르다. 부산을 닮은 전통주다. 사직 야구장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글을 마치며
이제 야구는 구장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그 도시를 걷고 그 도시의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올 시즌 원정 직관을 계획하고 있다면, 양조장 하나쯤 동선에 넣어봐도 좋다. 어차피 시간을 내서 그 도시까지 갔다면, 조금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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