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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크림만큼 중요한 클렌징! 여름철 클렌징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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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던 시절, 여름은 오롯이 견뎌야 하는 계절이었다.
음식은 쉽게 쉬었고, 술마저 신맛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그때 조선의 양반들이 선택한 해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술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 발효 중인 술덧에 증류식 소주를 더해 발효를 멈추고, 맛과 향을 안정시키는 방식. 그렇게 탄생한 술이 바로 과하주다.
‘지날 과(過)’, ‘여름 하(夏)’. 이름 그대로 여름을 나는 술이다.
여름을 건너기 위해 탄생한 주정강화 전통주, 과하주 / 이미지 출처: 거북이와 두루미 공식 인스타그램
과하주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한국식 포트 와인’에 가까운 주정강화 전통주다. 그러나 단순히 도수가 높고 달콤한 술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쌀이 남긴 잔당감이 혀에 얇게 남고, 누룩이 만든 산미와 향이 구조를 세운다. 그 위에 증류식 소주의 여운이 목 뒤에서 길게 이어진다.
발효주와 증류주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긴장감 있게 공존하는 구조. 과하주의 매력은 바로 이 균형에 있다. 차갑게 식힌 과하주 한 잔은 여름의 무게를 덜어내는 가장 한국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1. 경성과하주 – 술아원
정석에 가까운 밸런스로 과하주의 기본기를 보여주는 술아원의 경성과하주 / 이미지 출처: 술아원 공식 인스타그램
정석에 가까운 밸런스로 과하주의 기본기를 보여주는 술아원의 경성과하주 / 이미지 출처: 술아원 공식 인스타그램
과하주 입문자에게 기준점을 제시하는 한 병을 고르라면, 술아원의 경성과하주다.
여주 햅쌀과 누룩으로 빚은 술덧에 동 증류기로 얻은 소주를 더해 완성한다. 도수는 20도. 부담과 존재감 사이, 절묘한 중간 지점이다.
잔을 가까이 대면 산뜻한 과일 향이 먼저 올라온다. 하지만 실제로 과일을 쓰지는 않는다. 곡물만으로 매실을 떠올리게 하는 은은한 과육 향을 만들어낸다. 입안에서는 잔당감이 농밀하게 퍼지고, 뒤이어 쌀소주의 묵직한 여운이 천천히 이어진다. 과하주라는 장르의 교과서 같은 구조다.
차갑게 식힌 수육이나 닭냉채처럼 담백한 단백질과 잘 어울린다. 매실 소스를 곁들인 흰살생선, 혹은 기름기가 은은한 전 요리와도 균형을 맞춘다. 경성과하주를 마셨다면, 같은 양조장의 연화주 에디션까지 확장해보는 것도 좋은 흐름이다.
2. 마주향해 – 40계단 발효소
복분자의 과실 향과 누룩의 흙내음이 부산의 여름을 닮은 40계단 발효소의 마주향해 / 이미지 출처: 40계단 발효소 공식 인스타그램
복분자의 과실 향과 누룩의 흙내음이 부산의 여름을 닮은 40계단 발효소의 마주향해 / 이미지 출처: 40계단 발효소 공식 인스타그램
부산 남포동 40계단에 자리한 이 작은 양조장은 ‘나만 알고 싶은’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마주향해는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독특한 과하주다. 복분자를 더해 과하주의 구조를 한층 확장했다.
이름처럼 발효주와 증류주가 서로를 향해 나아간다. 그 사이에 복분자가 개입해 색과 향을 깊게 만든다. 잔에서는 검붉은 과실 향이 올라오고, 뒤에서는 누룩의 흙내음이 단단하게 받쳐준다. 탄닌감이 은근하게 느껴지며, 드라이한 레드와인을 떠올리게 하는 질감도 있다.
오리구이나 장어구이처럼 기름지고 힘 있는 음식과 잘 맞는다. 숯불 향이 배인 고기, 혹은 블루치즈 같은 숙성 치즈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부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과하주 한 병을 일정에 추가할 이유는 충분하다.
3. 화전일취 백화 18 – 화전일취
꽃의 부케와 조청 같은 질감을 한 병에 담은 화전일취 백화 18 / 이미지 출처: 화전일취 공식 인스타그램
꽃의 부케와 조청 같은 질감을 한 병에 담은 화전일취 백화 18 / 이미지 출처: 화전일취 공식 인스타그램
백화주는 여러 꽃을 덖어 발효 과정에 함께 담아내는 전통의 꽃술이다. 화전일취는 이 백화주의 개념을 과하주로 확장했다. 결과물은 한 병의 술이라기보다 하나의 향수에 가깝다.
잔을 기울이면 형형색색 꽃무늬 비단을 펼친 듯한 부케가 퍼진다. 입안에서는 조청처럼 점도 있는 단맛이 천천히 흐른다. 무게감 있는 당도와 화사한 향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과하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경험’에 가깝다.
약과나 꽃차 디저트와 궁합이 좋다. 크림치즈나 구운 무화과, 꿀을 곁들인 플레이트와 함께하면 한층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다. 전통주 애주가 사이에서 과하주의 종착지로 불리는 이유가 분명하다.
4. 온지과하주 – 온지술도가
청포도와 참외의 산뜻한 결을 품은 온지술도가의 온지과하주 / 이미지 출처: 온지술도가 공식 인스타그램
청포도와 참외의 산뜻한 결을 품은 온지술도가의 온지과하주 / 이미지 출처: 온지술도가 공식 인스타그램
과하주의 핵심은 균형이다. 발효주와 증류주 사이에서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가. 온지술도가는 이 질문에 ‘발효’ 쪽으로 답한다. 직접 띄운 자가누룩 ‘월화곡’을 사용해 섬세한 향을 극대화한다.
찹쌀과 월화곡이 만들어내는 풍미는 청포도와 참외, 풋풋한 서양배를 연상시킨다. 단맛은 절제되어 있고 질감은 가볍다. 전형적인 과하주보다 훨씬 경쾌하다. 입안을 훑고 지나간 뒤에는 산뜻한 여운만이 남는다.
이 과하주는 피크닉을 위한 선택지다. 콜드 파스타나 샤퀴테리, 멜론과 프로슈토와도 잘 어울린다. 화이트 와인 대신 선택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더 여름답다.
5. 1594 과하주 – 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
난중일기의 기록을 오늘의 잔으로 이어낸 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의 1594 과하주 / 이미지 출처: 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 공식 인스타그램
난중일기의 기록을 오늘의 잔으로 이어낸 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의 1594 과하주 / 이미지 출처: 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 공식 인스타그램
난중일기에는 과하주가 등장한다. 1594년 7월 27일, 활쏘기 훈련 후 마신 술로 기록되어 있다. 통영의 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은 이 역사적 맥락을 현재로 이어온다.
양조장은 건축가 출신 대표가 설계한 공간에서, 직접 재배한 쌀과 지역의 물로 술을 빚는다. 고서의 제법을 기반으로 한 과하주, 그 결과는 상당히 직선적이다.
도수는 16.5도지만 체감은 훨씬 깊다. 쌀이 주는 바닐라 향이 먼저 스치고, 이어 누룽지 같은 고소함이 단단하게 깔린다. 마지막에는 증류식 소주의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구조감이 뚜렷하고 남성적인 인상이 강하다.
숯불구이나 장어구이, 간장 양념의 고기 요리와 잘 맞는다. 통영식 해산물과도 좋은 궁합을 보인다. 과하주의 또 다른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한 병이다.
글을 마치며
과하주는 단순히 옛 술이 아니다. 여름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의 테이블에서도 충분히 세련된 선택지다. 발효와 증류가 교차하는 이 장르는, 와인과 위스키 사이 어딘가를 유연하게 오간다.
이번 여름, 냉장고에 화이트 와인 대신 과하주 한 병을 넣어두는 것은 어떨까. 차갑게 식힌 과하주 한 잔은, 계절을 다루는 가장 한국적인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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