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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미루다 떠난 곳
2025년 7월, 남해에 새로운 리조트가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마음 한켠에 담아두고 있었다. 다만 서울에서 남해까지는 마음처럼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몇 번의 계절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이번 여름 휴가만큼은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일정을 비웠다. 오픈한 지 이제 막 1년, 여전히 신상이라는 티가 나는 쏠비치 남해에서 꿈같은 2박 3일을 보냈다.
1. 다랑이 마을을 품은 빌라동
남해의 상징 다랑이 마을을 닮은 빌라동의 풍경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남해의 상징 다랑이 마을을 닮은 빌라동의 풍경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쏠비치 남해의 건축은 남해의 대표 풍경인 다랑이 마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산비탈을 따라 계단처럼 층을 이루며 논을 일구던 그 모습을 빌라의 객실동이 그대로 닮아 있었다. 층마다 살짝씩 비켜 앉은 구조 덕분에 어느 층에서든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바다를 마주하게 되는데, 그 안에서도 풀빌라 객실은 오직 빌라동 1층에만 자리한다.
테라스 문만 열면 펼쳐지는 프라이빗 풀 / 이미지 출처 : 필자 촬영
객실 테라스 문만 열면 펼쳐지는 오션뷰와 마당처럼 드나들 수 있는 나만의 풀. 그리고 객실 안쪽에 자리한 자쿠지 하나. 수영을 하다가 살짝 몸이 식는다 싶으면 몇 걸음 옮겨 자쿠지에 몸을 담근다.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다 다시 풀로 돌아가 헤엄을 친다. 그 사이를 몇 번이고 오가는 동안, 시간 개념이 흐릿해졌다.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이 온전히 객실 안에서 완결되는 하루였다.
2. 아침을 여는 고기잡이 배와 해안 산책로
객실 밖으로 보이는 바다와 프라이빗 풀 / 이미지 출처 : 필자 촬영
객실 창을 열면 바다가 막힘없이 펼쳐진다. 특히 아침이 되면 그 위로 작은 고기잡이 배들이 하나둘 지나가는데, 그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르게 시작됐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앉아 배들이 점점이 지나가는 걸 구경하는 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아침 루틴이었다.
리조트는 바다를 끼고 산책로도 잘 조성해두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느슨해진다.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걷기 위해 걷는 산책. 자극적인 일정 없이도 하루가 채워지는, 이 리조트가 가진 가장 조용한 매력이었다.
3. 남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라운지, 씨모어씨
맑은 날의 씨모어씨 / 이미지 출처: 쏠비치 남해 공식홈페이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닿는 곳, 씨모어씨다. 통창 너머로 바다가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라운지 공간이다. 원래대로라면 탁 트인 해안선과 수평선이 한눈에 펼쳐지는 뷰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머무는 2박 3일 내내 날씨가 궂어 해무가 짙게 껴 수평선은커녕 바로 앞바다도 흐릿하게 지워졌다. 아쉬움은 분명했지만, 안개 속에 잠긴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시간 자체는 이상하게도 나쁘지 않았다.
이곳에서 좋았던 또 한 가지는, 씨모어씨가 투숙객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잠깐 들러 넓게 펼쳐진 바다와, 다랑이 마을을 닮은 빌라동을 한 시야에 담을 수 있다. 남해를 지나가는 길이라면, 숙박 여부와 상관없이 한 번쯤 들러보길 권한다.
4. 이탈리아 남부를 닮았지만, 유자빛으로 물든 공간
리조트 곳곳 유자색, 레몬색으로 가득했던 쏠비치 남해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리조트 곳곳 유자색, 레몬색으로 가득했던 쏠비치 남해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쏠비치 남해의 콘셉트는 이탈리아 남부라고 한다. 이탈리아 남부 하면 떠오르는 게 레몬이라면, 남해를 대표하는 건 유자다. 그래서인지 리조트 곳곳에 스며든 샛노란색이 이탈리아의 레몬보다는 남해 유자의 상큼함을 닮아 보였다. 재미있는 건 그 컨셉이 사소한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객실에 비치된 소화기까지 샛노란색이었고, 룸키 역시 유자빛을 띠고 있었다.
아직 오픈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인지 리조트 전체가 깔끔하고 예뻤다. 낡은 구석 없이 컨셉이 선명하게 살아있는 공간에 머무는 기분은 생각보다 산뜻했다.
여행자를 위한 팁 - 잠깐의 외출, 갯내음 쏠비치 남해에서 차량 5분 거리
갯내음의 모듬장, 간장게장정식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리조트 안에서만 지내다 보면 가끔은 잠깐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다녀오기 좋은 곳이 갯내음이다. 차로 5분이면 닿는 거리라 몸이 무겁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소박한 간판의 한식집인데, 사장님이 국제요리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고 들었다.
조미료는 물론 설탕과 물엿, 요리당까지 일체 쓰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이 또렷하게 살아있는 상차림이 특징이다. 모듬장 정식과 게장 정식을 추천한다. 짜지도 달지도 않은 균형 잡힌 간에, 게살 본연의 단맛이 그대로 느껴져 숟가락을 놓기가 어려웠다. 리조트로 돌아가는 길, 잠깐의 외출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유자빛으로 남은 며칠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근사한 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만의 수영장을 가졌다는 감각, 그리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늘어지던 여유. 자연이 만들어내는 조용한 분위기와 곳곳에 스민 유자빛의 생동감이 묘하게 잘 어울리는 숙박이었다. 조용한데 생기가 있고, 느슨한데 지루하지 않은 며칠. 여유와 생동감이 동시에 그리울 땐, 다시 남해 쏠비치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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