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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헷갈리지 않고 그릴 수 있는가? 부끄럽지만 나는 여전히 헤매고는 한다. 혹시라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쉽게 그리는 법을 가져왔다.
건곤감리의 위치를 쉽게 기억하고 태극기를 올바르게 그릴 수 있도록 정리한 방법. / 이미지 출처: 오산시 네이버 블로그
하늘과 땅, 불과 물, 해와 달처럼 서로 대비되는 요소들이 대립하지 않고 어우러지며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는 태극기의 의미는 다시 봐도 아름답다. 이런 멋진 뜻을 담은 태극기는 언제부터 이런 모양을 한 걸까? 역사 속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한 태극기의 변천사를 쫓아가 봤다.
가장 오래된 태극기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응준의 태극기 도안. / 이미지 출처: 미국 해군부 항해국
이응준의 도안을 바탕으로 태극과 네 괘의 위치를 수정한 박영효의 태극기 도안. /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태극기의 원형은 조선의 개화기였던 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을 상징하는 어기만 있었던 조선은 미국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을 위해 처음으로 외교적 상징물인 국기를 만든다.
당시 통역관이던 이응준은 미국 함정인 스와타라(Swatar) 선상에서 급하게 이 태극기를 고안하게 되고, 이는 1882년 7월 발행된 미국 해군부 항해국 문서 ‘해상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882년 9월,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박영효는 이응준의 태극기를 토대로 태극의 좌우와 4괘 위치를 수정한 태극기를 만들어 고종에게 보냈고 이듬인 1883년 조선국기로 공식 제정된다.
1884년 조선을 방문한 미국인 주이가 가져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실물 태극기. / 이미지 출처: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
1890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현존 최고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 /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실물 태극기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 워싱턴에 있다. 이는 1884년 조선에 왔던 미국인 주이가 가져간 것으로, 지금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있다. 파란색과 빨간색의 자리가 지금과 다르다.
국내에서 보유중인 태극기로는 데니 태극기가 가장 오래됐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중이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태극 문양의 비율과 형태가 다르고, 4괘의 각도와 간격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의 태극기에서 민족의 태극기로
태극기가 태극기로 불리게 된 것은 1919년부터다. 이전까지 태극기는 조선국기로 불리며 외교적 상징에 머물렀다. 3.1운동을 기점으로 태극기는 일제에 대한 저항과 독립 의지를 상징하며 민중들과 가까워진다.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내기 위해 사용한 태극기 목판. /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청
일장기 위에 먹을 칠하고 태극과 네 괘를 덧그려 만든 진관사 태극기. /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청
일제강점기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태극기. /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포털
독립에 대한 염원과 동료의 무운을 비는 글이 빼곡히 적힌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청
우리가 아는 태극기
1949년 국기 제작법이 공표된 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태극기의 표준 형태. / 이미지 출처: 행정안전부
제각각이던 태극기들이 우리가 아는 지금의 규격으로 정리된 때는 광복 이후다. 1948년 8월 15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태극기 제작법을 통일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었고, 정부는 국기 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1949년 10월 15일 국기제작법를 확정해 공표하였다.
이때 괘의 자리와 태극의 방향도 오늘 모양으로 자리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태극기가 처음 국기가 된 1883년으로부터 예순 여섯 해 만이다.
겉모습은 바뀌어도
다양한 태극기의 모습들을 한자리에 모았던 예술가도 있다. 민화를 그리던 나정태 화백은 안중근 의사에 관한 책을 읽던 중 받은 감명을 토대로 역사 속 태극기들을 그리게 된다 . 역사 자료 도안, 헌 책방, 우표 수집 등을 통해 1882년부터 1951년까지 있었던 태극기를 한지에 채색하여 40점의 작품으로 만들어 2008년과 2014년 두차례 전시했다. 해당 전시의 도록과 사진을 보면 다양한 태극기의 모습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역사 속 다양한 태극기를 한지에 되살린 나정태 화백의 《역사의 태극기 展》 도록. / 이미지 출처: 통문관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려졌던 태극기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전시 현장. / 이미지 출처: 성남시청 블로그
1882년부터 1951년까지 이어진 태극기의 변천사를 작품으로 기록한 나정태 화백의 전시. / 이미지 출처: 성남시청 블로그
글을 마치며
여러 태극기를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태극의 비율이 다르고, 괘의 각도가 다르고, 색의 자리마저 뒤바뀐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모두를 태극기라 부른다. 겉옷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뜻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태극은 음과 양, 상반된 두 기운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맞물려 하나의 원을 이루는 그림이다. 그 둘레의 네 괘 역시 하늘과 땅, 물과 불처럼 결코 같아질 수 없는 것들이다. 태극기는 다름을 지우고 하나가 되자고 말하지 않는다. 다름을 그대로 둔 채 어떻게 하나의 원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140년 전 조선이 골랐던 이 도안이 지금 다시 눈에 들어오는 건, 우리가 사는 시대가 정확히 그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AI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까지 대신 답하기 시작했고, 알고리즘은 내 생각과 닮은 목소리만 골라 눈앞에 쌓아준다. 다른 의견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멀어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시대의 조화와 균형이 교과서에나 있는 말처럼 느껴지는가? 그러나 광복 역시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이룬 일이 아니었다. 사상도 지역도 계층도 달랐던 이들이 각자의 손으로 그린, 모양이 제각각인 깃발을 들고 같은 자리에 섰기에 가능했다.
올해 8월 15일에도 어김없이 창밖에 태극기가 걸릴 것이다. 다름 속에서 대립이 아닌 어울림을 보았던 선조들의 뜻이 현시대의 우리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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