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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에 한 번, 일본 세토 내해(瀬戸内海)의 작은 섬들은 거대한 예술의 바다로 변모한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포스터 / 이미지 출처: 세토우치 국제예술제(세토우치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
2010년, 인구 감소와 환경오염으로 활력을 잃어가던 섬들을 되살리기 위해 시작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Setouchi Triennale)는 이제 지역 재생의 상징이자 현대 미술의 정점으로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나오시마는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지 1시간 30분 정도 지나 도착한 다카마쓰 공항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하지만 소문난 미술 애호가라고 해도, 나오시마는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여행지다. 작은 도시 다카마쓰를 거점으로 하루에 몇 편 운행하지 않는 페리 시간표를 확인하고, 분 단위로 섬 안에 있는 미술관을 예약해야 하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
이자카야 美味万作(2-chome-8-45 Kawaramachi, Takamatsu, Kagawa 760-0052)
다카마쓰 시내 작은 건물 구석에 위치한 한국어로 ‘맛있는 음식이 가득함’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자카야 美味万作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다카마쓰 시내 작은 건물 구석에 위치한 한국어로 ‘맛있는 음식이 가득함’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자카야 美味万作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다카마쓰 공항에 내리자마자 피부에 닿은 것은 한국의 여름과는 또 다른 눅진하고 묵직한 공기였다. 여행의 첫날, 호텔 근처의 작고 낡은 이자카야를 찾았는데, 손글씨로 적힌 한자 메뉴판 앞에서 파파고마저 길을 잃었지만, 운에 맡긴 선택은 오히려 경이로운 미식의 경험으로 이어졌다.
게살 크림 고로케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가지 된장 구이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규스지를 추가한 오뎅탕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입천장이 까질 듯 뜨거우면서도 부드러웠던 게살 크림 고로케와 예상 가능한 맛이라 더 반가웠던 가지 된장구이, 그리고 그날의 백미였던 오뎅탕까지. 입안에서 결대로 흩어지는 무조림의 식감과 깊은 국물 맛은 예술을 마주하기 전, 흐트러진 오감을 정돈해 주는 완벽한 예비 의식이었다.
항구로 가기기 위해서는 짧지만 지하철 이용이 필수!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나오시마. 다카마쓰를 거점으로 한 여행의 묘미는 매일 아침 항구에서 다른 섬으로 떠나는 당일치기 여정에 있다.
오전 7시 40분 다카마쓰칫코 역에서 항구로 향하는 길, 페리 티켓 매진 직전에 줄을 서는 긴장감은 여행의 활기를 더한다. 오전 배를 놓치면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일정이 꼬일 수 있으니 조금은 서두르는 편이 좋다.
운이 좋으면 다카마쓰를 대표하는 캐릭터 포켓몬 ‘야돈’이 그려진 페리를 탈 수도!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페리에 올라 바닷바람을 맞으며 50분간 항해하다 보면, 멀리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이 보이기 시작한다. 만선을 외치며 손을 흔드는 스태프들의 환송은 내가 비로소 일본 예술의 심장부에 도착했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나오시마를 대표하는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나오시마를 대표하는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나오시마항 도착 후 300엔 버스를 타고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Benesse House Museum)으로 향한다. 지중미술관 예약이 점심 무렵이라면, 이곳에서부터 거꾸로 내려오는 코스가 훨씬 여유롭다.
베네세 아트 뮤지엄 (〒761-3110 Kagawa, Kagawa District, Naoshima)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입구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리처드 롱(Richard Long)의 <세토내해로 떠내려온 나무로 만든 원> (1997)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은 자연과 건축, 예술이 경계 없이 섞이는 장소이다.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리처드 롱(Richard Long)의 <세토내해로 떠내려온 나무로 만든 원> (1997)는 나오시마의 자연 풍경과 공명하며' 장소 특정적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야외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 사이로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눕거나 쉬며 자연을 만끽하는 모습은, 예술이 일상에 스며드는 가장 이상적인 풍경이다.
밸리 갤러리 ( 〒761-3110 Kagawa, Kagawa District, Naoshima)
밸리 갤러리 내부에 위치한 쿠사마 야요이의 <나르시스 정원>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츠요시 오자와의 88개의 불상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밸리 갤러리(Valley Gallery)로 이동하면, 쿠사마 야요이 <나르시스 정원>의 이 관객을 압도한다. 수많은 은색 공이 물 위와 공간을 뒤덮고, 빛과 바다를 반사하며 흔들리는 모습은 잊을 수 없는 황홀경을 선사하고, 츠요시 오자와의 불상 작업 또한 풀숲 사이에서 묘한 숭고함을 느끼게 하며 공간의 깊이를 더한다.
지중미술관 (3449-1, Naoshima, Kagawa District, Kagawa)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2004년 건립된 지중미술관(Chichu Art Museum)은 섬의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대부분의 공간을 지하에 숨겼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통로를 지나 깊은 지하로 들어서면, 오직 자연광만으로 작품을 비추는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미술관 외부의 정원은 모네의 작품 속 정원을 묘사해서 구성했다고 한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특히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5점이 걸린 방은 그 자체가 하나의 소우주이다.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그림 위를 서서히 이동하며 물결처럼 감싸는 그 찰나의 정적은, 수없이 봐왔던 모네의 작품을 전혀 다른 차원의 예술로 인식할 수 있다. (이 구역은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니, 들어가기 전 안내 직원의 주의 사항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미술관 내부 카페에서 바라보는 세토 내해 풍경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Tip: 바로 옆에 위치한 제임스 터렐의 작업은 대기 줄이 길 수 있으니, 다른 작품들을 충분히 본 뒤 마지막에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미술관 내 카페의 창가 자리는 통유리 너머로 세토 내해를 조망하며 점심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명소이다.
굿즈를 들고 있는 사진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여행에서 남는 건 굿즈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섬을 떠나는 페리 안에서 바라본 바다는 유난히 고요하다. 나오시마에서의 모든 경험은 결국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사라짐 속에서 오히려 예술이 어떻게 개인의 삶 속에 영구적인 무형의 형태로 남는지 배울 수 있다.
5월의 따스한 햇살 혹은 다가오는 6월의 푸르른 초여름을 앞둔 지금, 다카마쓰를 거점으로 한 이 예술 산책은 단순한 아트 투어가 아닌, 나오시마라는 섬 속에서 작품과 자연에 흠뻑 빠지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하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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