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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파르페를 찾는다. 계절을 혀로 확인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 내게는 파르페이기 때문이다.
잘 익은 제철 과일, 그 위로 흘러내리는 차가운 아이스크림, 유리잔을 타고 오르는 청량한 빛까지. 여름이라는 계절이 통째로 한 잔에 담긴다. 그중에서도 제철 과일 파르페는 여름 한 철에만 허락되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무더위 속에서 첫 스푼을 떠 넣는 순간, 올여름이 어떤 맛이었는지가 혀끝에 각인된다.
누군가에게 여름의 상징이 빙수라면, 내게 그 자리는 늘 파르페였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 오면, 어김없이 새 파르페를 찾아 길을 나선다.
제철 과일을 층층이 담아낸 여름날의 파르페 / 이미지 출처: 본문 내용을 토대로 생성한 챗지피티 이미지
파르페의 핵심은 층이다. 층층이 켜켜이 쌓아 올린 구조가 식감과 맛,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빚어낸다. 잔의 맨 아래에는 과일 콩포트, 그 위로 아이스크림, 다시 크림과 바삭한 시리얼, 꼭대기엔 생과일 한 조각. 스푼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는 짧은 사이에 서로 다른 질감과 온도가 차례로 입안을 지난다.
그러니 파르페는 한입에 완성되는 디저트가 아니다. 층을 하나씩 허물며 먹는 동안 비로소 완성되는, 시간의 디저트에 가깝다. 빙수가 계절을 잘게 부수어 뒤섞는 음식이라면, 파르페는 계절을 차곡차곡 정렬해 보여주는 음식이다.
파르페를 완성하는 다양한 레이어 구조 / 이미지 출처: 본문 내용을 토대로 생성한 챗지피티 이미지
흥미로운 사실 하나. 파르페는 원래 길쭉한 유리잔에 쌓아 올리는 디저트가 아니었다. 파르페parfait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완벽한 것’을 뜻한다. 프랑스식 파르페가 원형인 셈인데, 1867년 무렵의 옛 레시피를 들여다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얼굴이다. 크림과 달걀, 설탕을 얼려 굳힌 하나의 완제품에 가까웠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층층의 형태는, 이 디저트가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의 제철 식재료와 특유의 감각이 더해지며 완성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다시 지어진 셈이다. 제철 과일 파르페가 그토록 계절을 잘 담아내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봄의 딸기, 여름의 복숭아처럼, 파르페 하면 떠오르는 과일들은 저마다 짧고 분명한 절정을 지녔다. 문제는 그 절정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여름 과일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복숭아는 며칠 새 물러지고, 무화과는 속부터 조용히 주저앉는다. 그러니 제철 과일은 고이 아껴 둔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때에 먹어야 완성된다. 여름의 제철 과일 파르페가 유독 끌리는 것도, 매년 이맘때 마음이 급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프랑스식 파르페 / 이미지 출처: 본문 내용을 토대로 생성한 챗지피티 이미지
여름마다 파르페를 좇아 헤맨 끝에, 올여름 내가 정착한 곳은 연희동의 작은 티하우스 탄정이다. 큰길에서 한 걸음 비켜난 골목 안쪽, 격불로말차를 내는 고요한 공간. 탄정의 시그니처는 ‘탄정식’이라 부르는 한 상이다. 그날그날 가장 좋은 제철 원물로 지은 파르페에, 그 과일의 성정에 맞춘 차를 짝지어 낸다. 계절이 바뀌면 파르페도 옷을 갈아입는다. 말차 밤에서 딸기로, 그리고 지금은 체리 초코로. 한여름이 무르익으면 복숭아가 잔에 오를 차례라 했다.
탄정의 말차 파르페 / 이미지 출처: 탄정 네이버 플레이스
탄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차와의 페어링이었다. 야생고수홍차, 배화우롱, 기문홍차. 파르페의 단맛과 과일의 산미를 차가 지그시 눌러주거나 살며시 밀어 올리며, 어느 한쪽도 다른 쪽을 해치지 않도록 저울질한다. 달기만 한 디저트는 몇 스푼 못 가 물리기 마련인데, 한 모금의 차가 입안을 정갈하게 헹궈주니 마지막 스푼까지 첫입의 감각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탄정의 체리 초코 파르페 / 이미지 출처: 탄정 네이버 플레이스
이번 여름, 파르페를 한 번쯤 제대로 즐겨보길 권한다. 다만 조금 서두르는 편이 좋다.
지금의 체리도, 곧 오를 복숭아도, 유리잔에 머무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 제철 과일 파르페는 계절의 절정을 붙들어 두는 가장 우아한 방법인 동시에, 그 절정이 이미 지나가고 있음을 가장 정직하게 일러주는 신호다. 결국 파르페 한 잔을 떠먹는 일은, 다시 오지 않을 올여름의 한 장면을 기록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한 잔의 계절을 떠먹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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