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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어울리는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4

입추부터 추분까지, 조금씩 달라지는 가을의 풍경을 따라 브람스부터 코른골트까지 절기에 어울리는 클래식 4곡을 소개한다.

프로필 by 박선재 2026.09.11
입추, 처서 그리고 백로, 추분까지
  • 입추: 브람스, 피아노 4중주 1번
  • 처서: 라흐마니노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1번
  • 백로: 시벨리우스, 《나무들》 중 <가문비나무>
  • 추분: 코른골트, 가장 아름다운 밤

가을의 풍경, 가을의 절기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잎과 갈색 낙엽이 겹겹이 쌓인 가을 풍경. / 이미지 출처: 언스플래쉬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잎과 갈색 낙엽이 겹겹이 쌓인 가을 풍경. / 이미지 출처: 언스플래쉬

노오란 은행잎, 붉게 물든 단풍잎, 갈색빛으로 바스락거리는 낙엽, 못내 차가워진 공기는 가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가을의 시작인 절기 ‘입추(立秋)’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양력 8월 초에 들었고, 이어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와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마저 낮에는 여전히 30도를 웃돈다.



초록빛 나무 아래 사람들이 작물을 손질하고 가을맞이를 준비하는 이억영의 ‘입추 풍경’. 아직 남아 있는 여름의 기운과 다가오는 가을을 함께 담았다. / 이미지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초록빛 나무 아래 사람들이 작물을 손질하고 가을맞이를 준비하는 이억영의 ‘입추 풍경’. 아직 남아 있는 여름의 기운과 다가오는 가을을 함께 담았다. / 이미지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계절의 변화를 나타낸 절기에 맞추어 생활했다. 한국화가 창석이억영(1923-2009)이 그린 <입추 풍경>을 보면 아직 여름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초록 나무 아래 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농기구를 준비하고, 가을옷과 침구를 점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을의 시작이라고 해서 하루 아침에 더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계절은 분명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다.


♬ 브람스: 피아노 4중주 제1번, 작품번호 25

J. Brahms: Piano Quartet No. 1 in G minor, Op. 25 (1861)

가을하면 떠오르는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의 실내악곡이다. 특히 4악장은 빠르고 강렬한 리듬과 헝가리풍의 선율이 어우러져 뜨거운 에너지를 뿜어낸다. 아직 가시지 않은 여름의 열기, 그 안에서 태동하는 가을을 함께 느껴보자.



푸른 들판과 봉분 사이에서 사람들이 길게 자란 풀을 베며 가을을 준비하는 이억영의 ‘처서 풍경’. / 이미지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푸른 들판과 봉분 사이에서 사람들이 길게 자란 풀을 베며 가을을 준비하는 이억영의 ‘처서 풍경’. / 이미지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처서 매직’이라는 말이 있듯, 무더위 속에서도 어느 순간 선선한 바람이 느껴지는 절기다. 이 시기에 조상들은 산소를 찾아가 길게 자란 풀을 베며, 오래된 물건을 정리하고 비워내는 등 가을을 맞을 준비를 했다.


♬ 라흐마니노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1번

S. Rachmaninoff: Suite No. 1 Op. 5 for 2 pianos (1893)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곡가, 우리나라 콘서트홀에서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의 작품을 자주 만나볼 수 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이 가진 낭만적 끌어올림에감동 받았던 청중이라면 이 작품도 추천한다. 두 대의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유려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마법처럼 달라지는 공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푸른 산과 나무가 이어진 길을 따라 사람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담은 이억영의 ‘백로 풍경’. 여름의 짙은 초록 사이로 가을의 기운이 조금씩 스며든다. / 이미지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푸른 산과 나무가 이어진 길을 따라 사람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담은 이억영의 ‘백로 풍경’. 여름의 짙은 초록 사이로 가을의 기운이 조금씩 스며든다. / 이미지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백로가 되면 산과 들의 푸르름 속에서도 가을의 기운이 조금씩 짙어진다. 무성하게 초록빛을 뿜어냈던 나무들은 점차 빛바램을 머금어간다. 아직 나무는 푸르지만, 여름을 지나 수확의 계절로 향하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 시벨리우스: 《나무들》 중 <가문비나무>

J. Sibelius: The Spruce, Op. 75 No.5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의 5개의 피아노 소품 《나무들》 가운데 마지막 곡인 <가문비나무>는 서정적이고 쓸쓸한 감성이 잘 드러난 곡이다. 가문비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용으로 자주 쓰이는 상록수로, 가을을 지나 겨울까지 푸르름을 유지한다. 한껏 무성했던 여름의 초록이 빛을 잃어가는 백로의 풍경 속 외로우면서도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는 가문비나무를 떠올리며 들어보자.



마당에 붉은 고추와 곡식을 널어 말리고 사람들이 가을걷이에 분주한 모습을 담은 이억영의 ‘추분 풍경’. / 이미지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마당에 붉은 고추와 곡식을 널어 말리고 사람들이 가을걷이에 분주한 모습을 담은 이억영의 ‘추분 풍경’. / 이미지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마당에는 붉은 고추와 곡식이 널려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가을걷이에 분주하다. 추분에는 곡식과 열매가 익어가고, 사람들은 수확한 작물들을 거두어 말리고 손질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을 지나며 가을은 어느덧 풍성함을 더해간다.


♬ 코른골트, 가장 아름다운 밤

E. W. Korngold, Die schönste Nacht (1946)


가을의 낭만이 무르익는 시간,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 1897-1957)의 오페레타 《조용한 세레나데》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밤>은 그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특히 이 곡이 그리는 밤은 쓸쓸하거나 고독한 밤이 아니다.


‘공기는 달콤했고, 사방에는 노래와 향기와 빛만 가득했네. 달빛은 맑게 빛나고, 나무들은 속삭였으며, 모든 것이 행복을 속삭였지. 나는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곳은 고요하고 아름답게 빛났네. 시간은 멈춘 듯했고, 세상은 넓었으며, 나는 조용하고 기쁘고 자유로웠다.’


코른골트가 직접 연주하며 그의 허밍까지 녹음된 음원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편곡하여 연주한 버전이 있다. 초록으로 시작해 바람이 달라지고, 빛이 바래고, 마침내 풍성하게 무르익는 계절. 음악과 함께 가을을 눈과 귀로 만끽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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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QUIRE CLUB MEMBER
박선재
클래식 해설가
처음 만나는 클래식, 저랑 같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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