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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셔츠를 우아하게 입은 영화 2

이탈리아의 찬란한 햇살 아래 펼쳐지는 <리플리>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두 편의 영화가 보여준 여름의 미장센과 오래 기억되는 여름 스타일을 소개합니다.

프로필 by 이성현 2026.07.13
올여름, 가장 우아한 여름을 입는 방법
  • 리플리: 주드 로의 린넨 셔츠와 시어서커 재킷은 1950년대 이탈리아 리조트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준다.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티모시 샬라메와 아미 해머의 셔츠와 데님 스타일링은 여름 청춘의 노스탤지어를 완성한다.
  • 두 영화는 여름을 단순한 계절이 아닌, 햇살과 공기, 감정까지 담아낸 하나의 미장센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01.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 : 린넨 셔츠와 열등감의 서늘한 서스펜스


1950년대 이탈리아 남부의 가상의 해변 마을 ‘몽지벨로’. 영화 <리플리>는 스크롤을 멈추게 하는 완벽한 시각적 유희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위대한 진짜 이유는 그 눈부신 여름의 풍경이 인간의 가장 어두운 욕망과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 있다.


영화 <리플리> 속 몽지벨로 해변에서 린넨 셔츠를 입은 디키 그린리프. / 이미지 출처: 영화 <리플리> 스틸컷

영화 <리플리> 속 몽지벨로 해변에서 린넨 셔츠를 입은 디키 그린리프. / 이미지 출처: 영화 <리플리> 스틸컷

영화 속 ‘디키그린리프(주드 로)’는 태생부터 상류층인 남자의 여유를 온몸으로 뿜어낸다. 그의 여름은 구겨진 린넨 셔츠, 잘 재단된 시어서커 재킷, 그리고 손가락에 무심히 낀 시그넷 링(Signet ring)으로 완성된다. 반면, 그의 삶을 훔치려는 ‘톰 리플리(맷 데이먼)’의 초반 스타일은 숨 막힐 듯 고리타분하다.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운 두꺼운 코듀로이 재킷은 뜨거운 이탈리아 해변과 지독하리만큼 불협화음을 낸다.


여름의 우아한 리조트 스타일을 보여주는 <리플리>의 한 장면. / 이미지 출처: 영화 <리플리> 스틸컷

여름의 우아한 리조트 스타일을 보여주는 <리플리>의 한 장면. / 이미지 출처: 영화 <리플리> 스틸컷

리플리가 디키를 모방하며 서서히 그의 린넨 셔츠를 입기 시작할 때, 영화의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린넨이라는 소재가 가진 특유의 자연스러운 구김은 디키에게는 ‘여유’였지만, 리플리에게는 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 ‘불안’의 흔적처럼 보인다. 찬란한 태양빛이 인물들의 어깨 위로 쏟아질 때마다, 리플리의 창백한 열등감은 더욱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리플리>의 미장센은 우리에게 말한다. 가장 우아한 여름 옷은 완벽하게 다려진 옷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태도와 여유라는 것을.




02.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 낡은 셔츠와 첫사랑의 찬란한 채도


<리플리>의 여름이 욕망으로 가득 찬 서늘한 지옥이었다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유년의 달콤한 꿈이다. 1983년 이탈리아 북부의 어느 오래된 별장, 이곳의 여름은 쏟아지는 햇살과 잘 익은 살구,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


1983년 이탈리아 여름을 담아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풍경. / 이미지 출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1983년 이탈리아 여름을 담아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풍경. / 이미지 출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이 영화의 스타일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노스탤지어’다. 미국에서 온 대학원생 ‘올리버(아미 해머)’는 바람이 잘 통하는 헐렁한 오버사이즈 옥스퍼드 셔츠에 거칠게 컷오프한 데님 쇼츠를 매치한다.


마치 신경 쓰지 않은 듯 툭 걸친 그의 셔츠 자락은 열일곱 소년 ‘엘리오(티모시샬라메)’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할 만큼 매력적이다. 엘리오 역시 폴로셔츠와 줄무늬 티셔츠, 그리고 낡은 컨버스를 매치해 소년과 남자의 경계에 선 서투른 청춘의 단면을 시각화한다.


1983년 이탈리아 여름을 담아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풍경. / 이미지 출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1983년 이탈리아 여름을 담아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풍경. / 이미지 출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화면을 가득 채우는 필름 카메라 같은 따뜻한 채도는 이들의 서툰 감정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광장으로 나갈 때 펄럭이는 셔츠의 실루엣, 수영을 마치고 나온 촉촉한 머리카락, 그리고 낮잠을 자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나른한 오후의 햇살까지.


1983년 이탈리아 여름을 담아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풍경. / 이미지 출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1983년 이탈리아 여름을 담아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풍경. / 이미지 출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감독은 여름이 가진 특유의 ‘온도’와 ‘냄새’를 시각적 미장센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가 끝날 때쯤, 우리는 가본 적도 없는 1980년대 이탈리아의 어느 시골 마을을 격렬하게 그리워하게 된다.




에디터의 서머 팁 : 두 편의 영화가 남긴 흔적, 그리고 한 잔의 위로


두 영화는 여름을 즐기는 각기 다른 시각적 매뉴얼을 제안하는 동시에, 그 계절의 공기를 미각으로 음미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긴장감 넘치는 여름밤의 서스펜스를 만끽하고 싶다면 <리플리>를 틀어두고 이탈리아의 클래식 칵테일 ‘네그로니(Negroni)’를 준비하자. 진의 날카로운 향 뒤로 밀려오는 캄파리의 지독한 쓴맛은 디키를 향한 톰 리플리의 파멸적인 열등감과 닮아 있어, 붉은 칵테일 한 모금만으로도 방 안의 온도가 서늘하게 내려가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반대로 나른하고 감성적인 주말 오후를 원한다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피아노 선율을 배경음악 삼아 차갑게 칠링된 화이트 와인 ‘소아베(Soave)’를 잔에 따를 것. 잔 표면에 맺히는 싱그러운 물방울과 입안 가득 퍼지는 청사과 향과 미네랄은, 가보지 못한 1980년대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살구 밭과 소년들의 찬란하고도 짧았던 첫사랑의 계절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글을 마치며

결국 두 편의 마스터피스가 우리에게 남긴 흔적은 명확하다. 이번 여름 당신의 서랍장과 식탁에 필요한 것은 로고가 크게 박힌 값비싼 티셔츠나 화려한 휴양지 티켓이 아니다. 몸에 잘 맞는 블루 옥스퍼드 셔츠 한 장, 혹은 자연스러운 구김이 멋스러운 화이트 린넨 셔츠 한 장이면 충분하다.


단추는 평소보다 하나 더 풀고, 소매는 무심하게 걷어 올린 채 한 손에는 얼음을 채운 잔을 들 것. 스크린 속 그들처럼, 여름은 온몸으로 그 계절의 온도와 공기를 정면으로 통과시키는 자의 것이다.


자, 이제 에어컨을 켜고 당신의 스크린을 이탈리아의 뜨거운 태양으로 채울 시간이다.

ESQUIRE CLUB MEMBER
이성현
Apparel Production Manager
패션을 업으로, 틈틈이 글을 씁니다. 위스키와 와인을 비롯한 다양한 주류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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