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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교외선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부대찌개, 그리고 아날로그 감성이 흐르는 음악도서관과 활기찬 제일시장까지. 의정부에서 반나절 동안 즐기기 좋은 당일치기 데이트 코스를 소개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의 시계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날이 있다. 매일 타는 붐비는 지하철 대신, 조금은 느릿하지만 정겨운 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싶은 그런 날. 만약 당신도 팍팍한 일상에 지쳐 색다른 환기가 필요하다면, 이번 주말엔 서울 근교로 눈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과거의 향수와 현대의 세련됨, 그리고 펄떡이는 삶의 활기까지 모두 품고 있는 도시, 의정부. 대곡역에서 출발하는 교외선 무궁화호 ‘춘식이’와 함께라면 뻔한 일상도 금세 근사한 여행의 한 페이지로 변모한다.
기억 속 낭만을 싣고 달리는 교외선, '춘식이'
대곡역에서 의정부를 향해 가는 교외선 무궁화호, 이른바 ‘춘식이’가 플랫폼으로 들어설 때부터 여행의 설렘은 극대화된다. 과거 학창 시절 떠나던 엠티(MT)의 풋풋한 향수, 혹은 간식을 사 먹으며 설레던 유년 시절의 기억까지. 무궁화호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과거로 향하는 타임머신과도 같다.
기억 속 무궁화호와 달리 새롭게 정비된 춘식이는 생각보다 훨씬 쾌적하고 깔끔한 실내를 자랑한다. 자전거가 빠르게 달리는 듯한 여유로운 속도감 덕분에 창밖으로 펼쳐지는 소박한 풍경들을 눈에 담기 제격이다. 지나가며 캔맥주나 소시지를 팔던 카트의 낭만은 사라졌지만, 덜컹거리는 기차의 소음마저 기분 좋은 백색소음으로 다가온다.
[Tip] 명당자리 사수하기
의정부행 교외선 열차의 진정한 명당은 1호차 3, 4번 좌석이다. 맨 뒷자리라 뒤에 다른 승객이 없어 프라이빗한 느낌을 주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가장 예쁘게 담기는 뷰 포인트다.
캐릭터 춘식이를 닮아 춘식이라 불리는 교외서 / 이미지 출처 : 필자 촬영
부대찌개의 기원, 노포의 미학 <오뎅식당> 본점
의정부역에 도착했다면 곧장 부대찌개 골목으로 향할 차례다. 골목 전체가 부대찌개 냄새로 가득한 이곳에서의 목적지는 명확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부대찌개집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전설적인 노포, ‘오뎅식당’이다. 평일 점심시간에도 웨이팅이 필수일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노포 특유의 오리지널 감성을 제대로 느끼려면 분점보다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본점의 방바닥 자리를 사수해야 한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마저 이곳에서는 하나의 정겨운 의식이 된다.
자리에 앉아 부대찌개 세트를 주문하고 나면, 햄, 소시지, 베이컨, 민찌(다진 고기), 감자만두, 떡, 라면 등 푸짐한 재료가 담긴 전골냄비가 등장한다. 찌개가 끓어오르기 전, 맑은 대낮부터 소주와 맥주를 섞어 시원한 소맥 한 잔을 들이켜는 것은 이 당일치기 여행이 허락하는 가장 짜릿한 호사다. 빈속에 넘어가는 차가운 알코올과 뒤이어 들어오는 뜨겁고 담백한 국물의 조화는 완벽하다.
특히 듬뿍 들어간 파와 마늘의 알싸한 향이 수입 소시지와 햄 특유의 느끼함을 기가 막히게 잡아준다. 어릴 적 맛보던 짭조름한 ‘외국 소시지’의 투박한 풍미가 맑고 시원한 육수와 어우러져, 배가 불러도 숟가락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최초라는 수식어 덕분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부대찌개 / 이미지 출처 : 필자 촬영
최초라는 수식어 덕분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부대찌개 / 이미지 출처 : 필자 촬영
아날로그의 따뜻한 위로, <의정부 음악도서관>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니 이제 영혼을 채울 시간이다. 부대찌개 골목에서 소화도 시킬 겸 30분 정도 산책하듯 걷다 보면, 시에서 운영한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감각적인 공간인 ‘의정부 음악도서관’을 마주하게 된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CD와 LP, 그리고 음악 관련 서적들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압도당한다. 1층부터 3층까지 각기 다른 테마로 꾸며진 이곳은 공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플레이리스트다. 오래된 음악 잡지부터 1990년대부터 수집해 온 듯한 방대한 음반 컬렉션은 음악 애호가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LP 청음 공간이다. 취향에 맞는 음반을 골라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리는 순간, 지지직거리는 백색소음과 함께 아날로그 감성이 공간을 꽉 채운다.
[Tip] 이용 수칙
평일에는 여유롭게 감상이 가능하지만, 주말이나 대기자가 많은 시간대에는 뒷사람을 위해 청음 시간을 최대 30분으로 제한하는 매너를 지키자.
빛과 색채가 머무는 숲속 쉼터, <의정부 미술도서관>
음악도서관에서 청각적 영감을 얻었다면, 이번에는 시각적 만족을 위해 의정부의 또 다른 자랑 '의정부 미술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음악도서관과 함께 의정부 당일치기 문화 투어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마치 해외 유명 현대미술관에 온 듯한 유려한 건축미가 돋보인다. 시원하게 뚫린 중정과 나선형 계단, 그리고 통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자연광은 공간 그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국내외 희귀 아트북과 디자인 서적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으며, 연인과 함께 아름다운 화보집을 펄럭이며 영감을 나누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공간은 없다.
지식과 문화와 휴식이 공존하는 도서관 / 이미지 출처 : 의정부 미술도서관
지식과 문화와 휴식이 공존하는 도서관 / 이미지 출처 : 의정부 미술도서관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미식 카르텔, <의정부 제일시장> 맛집 탐방
여행의 완벽한 마침표를 찍기 위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의정부 현지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거대한 미식 창고인 ‘의정부 제일시장’이다. 다채로운 야채와 모종, 수입 과자 코너 등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할 뿐만 아니라, 훌륭한 먹거리 라인업은 포장해 가서 저녁 식사나 야식으로 즐기기에 제격이다. 제일시장에서 절대 놓치면 안 될 필수 맛집 5곳을 엄선했다.
1. 쌍둥이네 (정석을 밟는 빨간 떡볶이)
」시장 분식의 클래식. 쫀득한 식감과 매콤달콤한 소스가 완벽한 밸런스를 자랑하는 정석적인 빨간 떡볶이다. 평소 떡볶이를 사랑한다면 가장 먼저 방문해야 할 성지다.
2. 제일푸드 (이색적인 매력, 까만 짜장 떡볶이)
」쌍둥이네와 함께 제일시장 떡볶이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새까만 짜장 떡볶이는 단짠의 조화가 훌륭해 자꾸만 손이 가게 하는 마성의 매력을 지녔다.
3. 용천통닭 (통닭거리의 살아있는 전설)
」제일시장 한편에 자리 잡은 ‘통닭거리’에서 가장 이름난 터줏대감이다. 가마솥에서 튀겨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옛날 통닭을 뜯고 있노라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하다. 넉넉하게 얹어주는 닭똥집과 염통 튀김 서비스가 이곳의 인심을 증명한다.
4. 영선네 (넉넉한 인심의 종합 분식)
」떡볶이 외에도 김밥, 순대, 튀김 등 분식의 모든 것을 섭렵하고 싶다면 영선네를 추천한다. 탑처럼 쌓여 있는 바삭한 튀김산은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하며, 푸짐한 양에 두 번 놀라게 된다.
5. 스마일 찹쌀 꽈배기 (완벽한 디저트 마무리)
」양손 무겁게 장을 본 뒤, 마지막으로 입에 물어야 할 간식. 깨끗한 기름에 튀겨내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쫄깃한 찹쌀 꽈배기에 설탕을 듬뿍 묻혀 베어 물면, 기분 좋은 달콤함으로 시장 투어가 완벽하게 마무리된다.
1978년 설립된 대형 전통시장 / 이미지 출처: 네이버
글을 마치며
다시 의정부역으로 돌아와 집으로 향하는 길. 두 손에는 시장에서 산 떡볶이와 간식이 들려 있고, 귓가에는 온종일 들었던 음악의 잔향이 맴돈다.
특별하거나 거창한 계획이 없어도 좋다. 덜컹거리는 옛 기차의 진동, 세월이 녹아든 부대찌개 한 그릇, 그리고 따뜻한 음악 한 곡이면 충분하다. 낭만과 생동감이 공존하는 도시 의정부가, 지루했던 당신의 일상을 생각보다 훨씬 근사하게 바꾸어 놓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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