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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을 찢는 질주 '슈퍼레이스' 직관기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처음 만난 슈퍼레이스 레디컬 컵 우중레이스의 짜릿한 전율과 빗방울을 뚫고 달리는 초경량 레이싱카의 공기역학적 아름다움을 만나봅시다.

프로필 by 강정윤 2026.09.16
모터스포츠와 함께하는 완벽한 주말의 자동차 문화 3선
  • 우중레이스 : 세차게 내리는 빗방울을 뚫고 아스팔트 노면을 움켜쥐며 포효하는 고성능 머신들의 거친 질주
  • 레디컬 컵 코리아 : 초경량 포뮬러 스타일 레이싱카들이 동일한 스펙으로 트랙 위에서 펼치는 가장 공정하고 치열한 원메이크 레이스
  • 용인 스피드웨이 : 서울 근교에서 압도적인 배기음과 짜릿한 속도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아시아 모터스포츠의 상징적 공간

빗소리가 차창을 무겁게 두드리는 눅눅한 주말 아침,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뜻한 이불 속에서 게으른 단잠을 청하거나 아늑한 카페에 앉아 차분한 음악을 듣는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화창한 날이나 혹은 빗방울이 거세져도 오히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온몸의 아드레날린이 격렬하게 솟구치는 기이한 세계가 서울 근교에 존재한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장대비가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와 만나 하얀 김을 뿜어내고,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날렵한 날것의 기계들이 빗물을 가르며 포효하는 곳. 바로 아시아 모터스포츠의 뜨거운 성지이자 엔진 굉음이 대지를 뒤흔드는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다. 주말의 나른한 정적을 단숨에 깨부수고 모든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우기 위해 찾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모터스포츠 축제, 슈퍼레이스 현장의 첫 우중레이스 목격담을 생생하게 풀어낸다.



수도권에서 만나는 짜릿한 주말 탈출: 용인 스피드웨이

레디컬 컵 코리아 출전을 앞둔 27번 레이싱 머신의 차체 디테일. 레드 보디와 레이싱 넘버가 서킷의 긴장감을 보여준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레디컬 컵 코리아 출전을 앞둔 27번 레이싱 머신의 차체 디테일. 레드 보디와 레이싱 넘버가 서킷의 긴장감을 보여준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사실 일반적인 대중에게 모터스포츠 직관이란 영암이나 인제처럼 아주 먼 지방으로 며칠 동안 여행을 떠나야 하는 다소 무겁고 부담스러운 여정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는 서울 강남역을 기준으로 차로 단 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놀라운 지리적 접근성을 자랑한다. 2026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이 수도권 관객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단숨에 좁히기 위해 경기 일정과 장소를 매우 다채롭게 기획한 덕분이다.


당초 강원도 인제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던 라운드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로 전격 변경하여 화려한 수도권 나이트레이스를 개최한 혁신적인 결단만 보아도 관중을 향한 모터스포츠 협회의 진심이 느껴진다.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 나들이를 나온 가족 단위 관람객부터 특별한 데이트를 즐기려는 연인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자동차 마니아들까지 관람석을 꽉 메운 채 축제를 만끽하고 있었다.


특히 관람석 한편에서 알록달록한 우비를 껴입은 어린아이가 엄마 손을 꼭 잡은 채, 머신들이 빗물을 뿜으며 질주할 때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귀여운 모습은 거친 배기음 가득한 서킷에서 발견한 가장 따스하고 평화로운 대비였다. 관람석 스탠드를 넘어 피트와 패독 구역까지 직접 걸어 들어가 드라이버의 서늘한 긴장감을 공유하고 엔지니어들의 정교한 수작업을 코앞에서 관찰하는 것은 일반적인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모터스포츠만의 위대한 해방감이다.



공기역학 미학의 결정체: 레디컬 머신의 본질

갑자기 쏟아진 비에 우비와 우산을 챙겨 든 관중들이 용인 스피드웨이 이벤트존에 모여 있는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갑자기 쏟아진 비에 우비와 우산을 챙겨 든 관중들이 용인 스피드웨이 이벤트존에 모여 있는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이번 슈퍼레이스 무대에서 가장 기대를 모은 클래스는 단연 초경량 포뮬러 스타일의 레이싱카들이 격돌하는 '레디컬 컵 코리아'였다. 영국의 유서 깊은 레이싱카 제조사인 레디컬에서 제작한 차량들은, 기존 양산 승용차를 무겁게 보강하여 달리는 일반적인 박스카 레이스카들과는 설계 철학의 궤적부터 완전히 다르다.


대표적인 엔트리 사양인 SR1 XXR 모델은 공차 중량이 단 510kg에 불과한 차체에 188마력의 심장을 얹었고, 메인 세그먼트인 SR3 XXR 모델은 단 620kg의 무게로 무려 232마력이라는 비현실적인 추중비를 뽐낸다. 항공 우주 공학에 기반한 관형 스페이스프레임 섀시 위에 가볍고 질긴 탄소 섬유 및 유리 섬유 보디를 덮어씌운 레디컬 레이싱카들은 오직 트랙 위에서 바람의 저항을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지상의 전투기나 다름없다.


화려한 장식 요소를 단 1그램도 허용하지 않고 오직 속도와 안정성만을 위해 벼려진 래디컬머신들의 유려한 차체 실루엣은 기계 디자인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엄격한 기능주의 미학의 극치다.


사실 레디컬은 내가 그동안 해온 모터스포츠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알다시피 레디컬은 태생이 오직 서킷 주행과 경기만을 위해 탄생한 순수 레이싱카이기 때문에 일반 양산차를 개조한 레이스카와는 뼈대부터가 다르다. 우리나라 서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박스카 형태의 레이싱카들은 스톡카 부류를 제외하면 대부분 일상용 양산차를 개조한 차량들이다. 당연히 가혹한 레이스 조건에서 매번 일정한 페이스로 한계 주행을 버텨내기는 쉽지 않다.


레이싱을 하면서 드라이버가 받는 스트레스의 50% 이상은 늘 차량 트러블이나 기계적 한계에서 오기 마련이다. 나 같은 파트타임 드라이버에게 주말 레이스를 통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레디컬은 상상을 초월하는 탄탄한 내구성 덕분에 아주 기본적인 정비만으로 언제든 주행이 가능하다. 실제로 한 대회에 10대 가까운 차량이 출전해도 전담 미케닉은 단 3명이면 충분할 정도로 뛰어난 정비성과 정교한 신뢰성을 보여준다.



자연이 연출한 최고의 윈드터널: 빗속의 에어로다이내믹스

98번 레이싱카 옆으로 우중레이스를 위한 타이어가 놓인 피트 풍경. 젖은 노면에서 접지력을 책임지는 중요한 장비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98번 레이싱카 옆으로 우중레이스를 위한 타이어가 놓인 피트 풍경. 젖은 노면에서 접지력을 책임지는 중요한 장비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롤링 스타트 방식으로 시작을 알리는 신호등의 녹색 불이 켜지자, 사납게 울부짖는 래디컬머신들이 고인 빗물을 사방으로 튕겨내며 그리드를 박차고 나갔다. 기어 시프트가 단단하게 맞물릴 때마다 터져 나오는 하이톤의 하이포먼스 배기음이 용인의 고요한 산자락을 뒤흔들며 서킷 전체에 날카롭게 공명했다.


수중에서 펼쳐지는 가혹한 우중레이스는 타이어의 접지력을 극도로 떨어뜨려 드라이버들에게는 지옥 같은 시험대이지만, 관객들에게는 자연이 직접 설계한 거대한 에어로다이내믹 윈드터널 실험실을 관람하는 시각적 횡재가 된다. 최고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코너를 공략하며 노면의 물웅덩이를 통과할 때마다, 차체 바닥의 디퓨저와 후면의 거대한 다중 포지션 리어 윙 뒤편으로 엄청난 양의 물보라가 공기역학적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소용돌이 모양의 유려한 궤적을 그렸다.


눈에 보이지 않던 공기의 흐름이 빗물 입자들과 결합하여 차체 곡선을 타고 어떻게 흘러가고 정교하게 제어되는지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경이로운 광경은 컴퓨터 렌더링 시뮬레이션조차 명함을 내밀지 못할 위대한 시각 예술이었다.



공정하고 치열한 경쟁: 원메이크 레이스의 품격

피트에 나란히 정렬된 레디컬 컵 레이싱카들. 거대한 리어 윙과 낮은 차체에서 전용 레이싱 머신의 공기역학적 설계가 드러난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피트에 나란히 정렬된 레디컬 컵 레이싱카들. 거대한 리어 윙과 낮은 차체에서 전용 레이싱 머신의 공기역학적 설계가 드러난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레디컬 컵 코리아가 선사하는 가장 큰 스포츠맨십의 묘미는 모든 참가자가 완전히 동일한 사양의 차량과 타이어로만 승부를 겨루는 원메이크 레이스라는 점에 있다. 엔진 파워나 부품 튜닝의 자본력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다른 모터스포츠 종목과 달리, 레디컬 컵은 드라이버의 예리한 코너 공략 노하우와 노면 컨트롤 능력이 순위를 가르는 유일한 변수다. 또한, 모든 드라이버가 동일한 조건에서 달리기 때문에 서로의 주행 데이터와 인카 영상을 피트에서 투명하게 공유하며 정밀하게 비교 분석하는 선진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이러한 공평함은 드라이버들 사이에 끈끈한 유대와 소통을 이끌어낸다. 과거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는 피트가 오픈되어 있어서 선수들끼리 왕래하기 좋았지만, 상위 클래스로 갈수록 팀 간의 장벽이 높아지고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레디컬 컵은 같은 차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기 때문에 드라이버 간의 유대 관계를 아주 넓고 깊게 가져갈 수 있다.


빗길에서 오버스티어로 후미가 요동치는 순간을 섬세한 카운터 스티어로 통제하며 숨 막히는 추월전을 벌이다가도, 경기가 끝나면 텐트에 모여 텔레메트리 데이터를 펼쳐두고 함께 피드백을 주고받는 모습은 내가 모터스포츠를 사랑하는 진정한 본질이다. 1.9G에 달하는 횡가속도를 견디고 요철을 흡수하며 거동을 제어하는 닉-링크 서스펜션의 탄성을 몸으로 느끼는 사투는 그야말로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잊지 못할 첫 직관,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최종 세팅을 마치고 피트레인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레디컬 머신의 뒷모습. 낮게 깔린 차체와 대형 리어 윙이 눈길을 끈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최종 세팅을 마치고 피트레인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레디컬 머신의 뒷모습. 낮게 깔린 차체와 대형 리어 윙이 눈길을 끈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체커기가 맹렬하게 휘날리며 우중레이스의 뜨거웠던 배기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순간, 온몸에 꽉 들어가 있던 긴장의 끈이 기분 좋게 풀어졌다. 처음으로 직관한 용인 스피드웨이에서의 레디컬 컵 레이스는 왜 수많은 관람객이 매 시즌 모터스포츠와 슈퍼레이스라는 축제에 뜨겁게 열광하고 빠져드는지 모터스포츠의 매력을 가슴 깊이 납득하게 해 주었다.


매 순간 렌즈를 통해 사물의 진실된 형태를 잘라내어 표현하는 작가들의 치열한 창작 고민처럼, 젖은 트랙 위에서 0.001초의 한계를 깎아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머신들의 유려한 거동은 모빌리티 디자인을 연구하는 내 머릿속에 새로운 영감의 엔진오일을 가득 수혈해 주었다.


내가 만약 전업 선수가 아니라면 왜 모터스포츠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스트레스만 받으며 한없이 고립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진정한 교류와 삶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지 말이다. 레디컬 컵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 유쾌한 해답을 보여준다.


다행히 올해의 이 웅장한 질주는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26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은 오는 10월 24일과 25일, 이곳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시즌 최고의 왕좌를 가리는 더블라운드 최종전 'GOLDEN MOMENTS'를 개최할 예정이다. 만약 지루하게 반복되는 주말 일상과 획일화된 스마트폰 화면의 가벼운 자극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면 주저 없이 용인으로 엔진 시동을 걸어보길 강력히 권한다. 빗속을 거칠게 찢어발기던 래디컬머신들의 포효와 거대한 빗물 스플래시가 당신의 메마른 일상을 다시금 뜨겁게 달리게 할 폭발적인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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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QUIRE CLUB MEMBER
강정윤
자동차디자이너 / 교수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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